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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세계인이 함께 써 온 일기, '근대세계의 혁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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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서울대 명예교수]
'래디컬'(radical)이라는 영어 낱말은 '급진적인', '과격한' 등의 형용사나 '급진파'라는 의미의 명사로 보통 쓰이지만, 그 어원에 따르면 '뿌리의', '뿌리와 관계하는'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의 어원 자체가 어떤 사회를 전면적으로 바꿔내려는 급진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사회 현실의 뿌리까지 파고드는 깊은 성찰과 인식을 갖춰야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뿌리 '근'(根)이 들어간 우리말의 '근본적'이라는 말과도 바로 이어짐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는 근대의 세계사를 근본부터 되짚어 성찰해야 할 시점에 있다. 좋은 예로,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가자 전쟁은 기존의 세계질서 붕괴를 잘 보여준다. 북미와 서유럽의 주류 정당과 언론은 입을 모아 하마스의 기습공격이 끔찍한 테러임을 강조하며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민간인 학살을 애써 외면한다. 하마스의 무차별적 민간인 공격과 인질 납치 등은 규탄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이스라엘과 그 배후의 서구 열강들이 수백만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하루아침에 자신의 땅과 집에서 몰아내 난민으로 만든 후 80년이 가깝도록 국제법을 무시하며 이들의 정당한 저항을 짓밟아왔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진다. 오죽하면 국제사법재판소가 지난 3월말에 이스라엘의 잔인한 군사행동에 제동을 거는 결정을 내렸을까. 물론 이스라엘은 국제사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고 있지만, 그 결정의 파급력은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가자 전쟁은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고통에 빠뜨리지 않는다. 당장 이스라엘 안에서도 군사행동에 반대하는 여론이 압살되고 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가자 전쟁에 항의하는 시위를 '반(反)유대주의'라고 왜곡하면서, '반전'(anti-war)이 아닌 '친팔레스타인'(pro-Palestine) 시위라는 부정확한 표현을 쓴다. 하버드 등 미국 유수의 대학 총장들이 대학 안에서 반유대주의를 막지 못했다며 기부를 끊겠다는 거액 기부자들의 위협과 극우세력의 무차별 공격에 못 이겨 사직했고, 캠퍼스 반전 농성장은 경찰이 투입되어 강제 해산되고 있다.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 민주주의의 기본이 다름아닌 미국과 서유럽에서 훼손되고 있는 것이다.

소련 등 현실사회주의권이 자본주의와의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지 40년이 가깝지만,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극복할 담론과 이론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 체제의 억압과 착취에 분노한 대중들은 극우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정치세력에 기울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와 추종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극우 정당의 부상이 위협적이며 이탈리아에서는 이미 무쏠리니를 찬양하는 젊은 여성 정치인이 수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의 장기집권도 다를 바 없다. 가브리엘 보리치의 칠레 좌파 정권이나 재집권한 브라질의 룰라 정부도 고전하고 있다.

2010∼11년에 세계의 주목을 끈 '아랍의 봄'은 아랍 세계의 민주화와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를 한껏 키웠지만, 10년이 넘은 지금 오히려 그 이전보다 정치 현실이 더 후퇴한 면이 많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은 이처럼 아랍 세계가 지리멸렬한 탓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시진핑의 장기집권이 현실화된 중국, 일당 지배체제가 흔들릴 기미가 없는 일본 등 동아시아의 상황도 심각하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근본으로 돌아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참모습을 그 뿌리부터 파헤치고 싶은 갈증을 느끼게 된다. 익천문화재단 길동무(이하 '길동무') 인문학당이 6월 5일부터 대면/비대면 동시 진행으로 여는 <근대세계의 혁명사>는 바로 그러한 노력을 향한 작은 발걸음이다(홈페이지 참조. https://gildongmu21.com). 프랑스대혁명, 러시아혁명, 멕시코혁명, 스페인내전과 사회혁명, 중국혁명, 쿠바혁명, 베트남전쟁 등 대표적인 혁명을 총 10회에 걸쳐 매주 공부한다. 이미 작년 가을에 시범적으로 강좌를 열어 그 성과를 평가하며 가다듬은 프로그램이다. 바쁜 일정에 시달리는 수강생을 감안하여 제한된 숫자 안에서 강좌를 선별해 들을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의 역사적 당면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최신의 연구 성과를 소화해낸 실력 있는 학자들과 만나는 장이다. 강의를 맡은 학자의 입장에서는 시장주의가 대학과 기초학문을 잠식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연구를 대중에게 알리고 평가를 받으며 지적 자극을 얻는 자리가 될 것이다. 이 강좌가 위축되고 있는 대학의 비판적 인문사회과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도 감히 기대해본다.

이 기획을 위해 작년의 시범 강좌를 모니터링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수강생들이 근대세계의 실상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혁명의 실상이나 스페인 내전의 사회혁명적 성격 등은 우리 지식계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내용인데, 해당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흡족해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길동무의 <근대세계의 혁명사>는 '힐링의 인문학'과는 무관하며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장소도 아니다. 자신의 삶과 자신이 속한 사회 공동체의 절실한 역사적 과제를 성찰하고 논의하는, 비록 작고 미약하지만 탄탄한 실천적 토론의 자리가 되고자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길동무는 앞으로 서구의 68혁명과 칠레혁명을 비롯하여 현대의 혁명과 저항의 역사 또한 추적해 나가려고 한다. 더불어 2024년 하반기부터는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시 이래 동학농민전쟁, 3‧1운동과 4월 혁명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한반도의 혁명사에 대해서도 알찬 프로그램을 짜 나갈 계획이며,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심도 있는 사회과학적 분석의 장도 준비하려고 한다.

올해 2월, 긴 교수 생활의 정년을 하면서 쉬고 싶기도 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 작은 소임이라도 보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문학당 운영위원장까지 맡게 되었다. 도리어 감사하며, 길동무 인문학당이 래디컬하면서도 유연한 시민들의 소중한 커뮤니티로 자리 잡아나갈 수 있게 최선을 다해보고 싶다.

○ 바로 신청하기 : 근대세계의혁명사수강신청 클릭
- 일시 : 6월 5일 ~8월 7일(매주수요일 10회)19시~21시
- 장소 : 길동무 교육관(서울시 서초대로 46길 74, 민변 4층)
- 정원 : 대면 25명(수도권)+비대면(ZOOM)20명(비수도권) 신청+입금 순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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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환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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