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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광주시민이 폭도라는 5·18 조사위”…위태로운 과거사 위원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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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실과 여순 10·19범국민연대,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국가폭력피해 범국민연대 등 주최로 열린 ‘과거사 진상규명의 퇴행 진단과 대응방안 모색 토론회’ 모습. 주최 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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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기 여순사건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왜곡된 개별 보고서의 조사과제를 재조사할 제2기 5·18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 (기우식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대변인)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은 22대 총선 과정에서 드러난 민의를 반영한 제3기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이형숙 추모연대 진상규명 특위 부위원장)





여순사건 조사위, 5.18 조사위, 2기 진실화해위 등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지난 정부 당시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만들어 탄생한 각 위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윤석열 정부 이후 “현재의 위원회 구조에서는 희망이 없으니 차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로에 놓인 상태인데, 이들 위원회의 활동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실과 여순 10·19범국민연대,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국가폭력피해 범국민연대 등이 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 ‘과거사 진상규명의 퇴행 진단과 대응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과거사 전문가들은 부실 조사, 왜곡된 기록 등 현재 과거사 위원회가 놓인 위기에 대한 진단과 우려를 쏟아냈다.



여수⋅순천10⋅19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여순사건위) 관련 토론자로 참석한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현재 상황이 “두렵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여순사건에 대한 자료 조사와 이에 대한 내용 분석은 아득히 먼일처럼 느껴지고, 보고서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질지에 대해서는 무섭다”는 의미였다. 김 연구관은 “만약 이 보고서가 ‘빨갱이 반란보고서’로 만들어진다면, 이는 이승만 정권이 행했던 과오를 70여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심각한 역사의 후퇴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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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청에서 운영하는 공공기관 온라인 전자조달 및 입찰 시스템 ‘나라장터’에 공고된 여순사건위원회 발주 연구용역. 전문가들은 심각한 역사 왜곡을 우려하고 있다. 나라장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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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순천 10·19 사건이란 정부 수립 초기 전남 여수에서 주둔하던 국군 제14연대 일부 군인들이 국가의 ‘제주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 1948년 10월19일부터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된 1955년 4월1일까지 여수·순천지역을 비롯하여 전남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혼란과 무력 충돌,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민간인이 희생당한 일이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 피해를 다루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 관련 발제자로 참석한 김희송 전남대 교수는 “직권조사 사건 보고서에서 국가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가해자의 궤변과 왜곡‧폄훼의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18조사위의 군경피해 보고서는 광주시민을 여전히 ‘폭도’로 명명하고 있다. 계엄군의 일방적 주장과 기억의 편린으로 재구성한 5‧18조사위 보고서는 진실을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다시 은폐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에서 형제복지원 등 수용시설 인권침해까지 과거사 사건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파행에 대한 우려와 대안도 제시됐다.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는 “진실화해위가 우경화되고, 역사 수정주의가 시도되며, 과거청산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공 담론이 더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는 현시점이야말로 포괄적 과거청산이라는 실험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며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과거청산의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묻는 동시에, 우리가 상실한 가치, 지켰어야 할 가치를 담론화하는 작업에서부터 과거청산은 다시 ‘운동’이 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2022년 1월 국무총리 소속으로 출범한 여순사건위는 내년 4월 모든 활동이 종료된다. 2019년 12월 출범했던 5·18조사위는 지난해 12월 조사를 종료했고 6월까지 종합보고서 작성만 남았다. 2020년 12월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1년 기간 연장을 거쳐 내년 5월 조사를 마치고 11월에 모든 활동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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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실과 여순 10·19범국민연대,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국가폭력피해 범국민연대 등 주최로 열린 ‘과거사 진상규명의 퇴행 진단과 대응방안 모색 토론회’ 모습. 주최 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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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위와 관련해서는 특히 보고서기획단의 용역 문제가 주요하게 거론됐다. 발제를 맡은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은 “보고서기획단은 보수 성향 일색의 인사로 구성된 것도 문제지만 진상조사보고서를 외부 용역으로 맡기고, 기획단은 이를 점검한다고 한다”면서 “그럴 거면 사건조사도 용역으로 하면 되지 않나. 70년이나 기다려서 특별법에 의한 진상규명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의 연속”이라고 했다.



김희송 전남대 교수는 발제에서 5·18조사위의 조사 부실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공개된 전원위원회 회의록을 살펴보면 진상규명 불능된 사건의 대부분은 조사부실이 불능의 사유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직권조사된 사건의 사실관계에 대한 위원들 간의 해석과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조사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진상규명불능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한 1980년 5월24일 계엄군 간 오인사격과 이후 자행된 송암동 민간인 학살을 5.18조사위가 ‘K-57 철수작전’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학살을 은폐하는 효과를 수반한다. K-57 철수 작전이라는 ‘완곡한 표현’이 담긴 5‧18조사위 군경피해 보고서는 사실관계를 호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르게 말하기를 통해 진실을 부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 관련 토론자로 참여한 이형숙 추모연대 진상규명특위 부위원장은 “지난 과정을 볼 때 피해자들의 양보만으로 과거청산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과거청산 진상규명을 위한 기반 마련, 법 제도 개선을 통해 국가폭력의 진실규명을 위한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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