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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불의에 맞섰다…5·18 최후항전서 산화한 학생 시민군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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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주기 기념식서 학생 시민군 류동운 열사 조명

'최후항전' 5월27일 사망자 25명 중 13명이 학생

뉴시스

[서울=뉴시스] 박태홍 기자 = 공수부대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 시민군 진압 작전을 마치고 도청 앞에 집결하고 있다. 박태홍 뉴시스 편집위원이 1980년 당시 한국일보 사진기자로 재직 중 5·18 광주 참상을 취재하며 기록한 사진을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에 즈음해 최초로 공개한다. (사진=한국일보 제공) 2020.05.17. hipt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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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제44주기 5·18민주화운동 정부기념식이 항쟁 당시 최후 항전을 하다 산화한 고(故) 류동운 열사 등을 조명한다. 류 열사와 함께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다 산화한 학생 시민군들의 면면에 관심이 모인다.

국가보훈부는 18일 오전 10시부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44주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거행한다.

기념식에서는 신군부 상무충정작전에 맞서 시민군 항쟁 거점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숨진 학생 시민군 류 열사가 공연으로 재조명됐다. 류 열사 외에도 당시 최후까지 무도한 국가권력에 맞서 싸운 학생들이 있었다.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1시 3·7·11공수여단과 20사단을 동원해 '상무충정작전'을 벌여 도청과 금남로 일대를 무력 진압한다.

이 작전으로 숨진 희생자는 총 25명으로 파악됐다. 도청에서 숨진 14명 중 당시 학생은 13명(대학생 6명·고등학생 5명·중학생 1명·재수생 1명)에 달한다.

이들의 사인은 모두 총상이다. 도청에서 숨진 시민군의 사망 경위 파악에 나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단발성(1발) 총상자 수를 5명, 다발성(2발 이상) 총상자를 9명으로 특정했다.

조사위는 이를 토대로 학생들이 계엄군에 격렬하게 저항하다 숨진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무력 진압에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도청을 지키다 산화한 시민군 중 최연소 희생자는 고 문재학·안종필(당시 15세) 열사다. 이들은 광주상업고등학교 1학년 동급생으로 도청 뒤편 경찰국 본관 2층 복도 중앙 로비에서 함께 숨졌다.

특히 안 열사의 사연은 2019년 39주년 5·18 기념식에서 소개된 바 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류 열사를 비롯한 학생 시민군들이 마지막까지 품었던 이야기를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소개한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은 "이번 기념식을 통해 국민과 미래세대가 오월 영령들이 지켜낸 희망 위에서 더 큰 꿈과 희망과 하나되는 대한민국을 꽃 피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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