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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영업익 반 토막’ DB하이텍 위기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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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치 파운드리 불황 때문에…


DB그룹 핵심 계열사 DB하이텍이 극심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DB그룹 경영진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DB하이텍 실적 부진이 지속될 경우 그룹 지주사 전환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매경이코노미

DB하이텍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DB하이텍 부천캠퍼스와 김남호 DB그룹 회장. (DB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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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하이텍 1분기 실적 부진

영업이익 411억원, 1년 새 50% 감소

DB하이텍은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411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50.44% 감소했다. 매출도 2615억원으로 같은 기간 12.3% 줄었다. 앞서 지난해 영업이익이 2663억원에 그쳐 2022년 대비 65%나 감소했는데 올 들어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의미다. 영업이익률은 16%로 10%대에 머물러 지난해 1분기(28%) 대비 급감했다. 2022년 연간 영업이익률이 46%로 ‘꿈의 영업이익률’을 자랑했지만 호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DB하이텍 실적이 악화된 것은 전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TV, 스마트폰 등 전방 산업 수요 부진으로 핵심 사업인 8인치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이 불황에 빠진 영향이 크다. 8인치 반도체 업체들 재고가 넘쳐나 평균판매단가(ASP)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는 우려다.

임소정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8인치 파운드리 업황이 여전히 어려워 DB하이텍은 올해 연간 기준 매출 1조400억원, 영업이익 1404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역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적 부진 흐름이 심상찮자 DB하이텍은 신성장동력 발굴에 힘쓰는 모습이다. 2030년까지 차세대 전력반도체 등 신사업에 4조7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매출 4조원, 영업이익 1조원, 시가총액 6조원을 실현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내놨다. 목표 달성을 위해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실리콘카바이드(SiC), 갈륨나이트라이드(GaN)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를 도입했다. SiC에 7000억원, GaN에 4000억원을 투자해 SiC는 2027년부터 월 2만장, GaN은 내년부터 월 1만장 규모로 양산할 예정이지만 실적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미지수다. 미세 공정 기술을 다룰 수 있는 12인치 파운드리 사업 진출도 적잖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는 DB하이텍이 12인치 파운드리 사업에서 성과를 내려면 최소 3년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여파로 DB하이텍 주가도 연일 하락세다. 지난해 말 6만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최근 4만원대로 떨어졌다(5월 9일 종가 4만3350원). 이 때문에 주주 불만이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고심이 크다는 후문이다. 이른바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행동주의 펀드 KCGI를 비롯해 주요 주주들이 또다시 주주행동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DB하이텍은 한때 지분 7.05%를 보유했던 2대 주주 KCGI가 주주행동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에 시달려왔다.

지난해 9월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당시 DB그룹 지주사 격인 DB Inc.(이하 DB)는 이사회를 열고 합금철 제조 계열사 DB메탈을 흡수합병하기로 하면서 KCGI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DB 측은 “IT, 무역, 브랜드 사업이 안정적 성장세를 보이지만 지속 성장하려면 기존 사업과 시너지가 가능하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사업 포트폴리오 확보가 필요하다”며 합병 목적을 설명했다. 기존 IT, 무역, 브랜드 사업 등에 더해 DB메탈 전문 분야인 합금철 사업을 합쳐 성장성을 더하고 경영 효율성도 높이겠다는 의미다.

DB메탈은 합금철 분야 국내 1위, 정련합금철 분야 세계 2위의 합금철 전문 기업이다. DB메탈 최대주주는 지분 28.83%를 보유한 그룹 핵심 계열사 DB하이텍이다. DB와 DB메탈이 합병하면 단숨에 매출 1조원대 회사로 커진다.

하지만 재계 시각은 달랐다. 시장에서는 DB와 DB메탈 합병을 두고 김남호 DB그룹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김준기 창업회장과 장남 김남호 회장, 장녀 김주원 부회장 등 오너 일가는 당시 DB 지분 43.82%를 보유한 상태였다. 또한 김남호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DB메탈 지분 95.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DB그룹은 합병 이후 김 회장과 오너 일가의 DB 지분이 52.47%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KCGI는 DB하이텍 지배주주의 사적 이익 추구, 불투명한 경영, 무시되는 주주 권익을 지적하는 등 본격적인 주주행동에 나서면서 경영권 분쟁 우려가 불거졌다. 논란이 커지자 DB그룹은 결국 지난해 10월 DB와 DB메탈 합병을 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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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DB하이텍 지분 꾸준히 매입

지주사 전환 준비하나

DB와 DB메탈 합병이 무산됐지만 시장에서는 DB그룹이 숙원 과제인 지주사 전환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DB의 지주사 전환은 DB하이텍 주가 흐름과 관련이 깊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총자산이 5000억원을 넘고, 자회사 지분 가치가 전체 자산의 50% 이상인 기업은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이때 이 회사는 2년 내에 상장 자회사 지분의 30% 이상을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지금 분위기대로라면 DB는 올해 지주사 전환 통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DB의 자산총계는 8794억원인데, 이 중 DB하이텍 지분 801만2783주(18%) 가치가 약 4696억원으로 53.4%에 이르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DB는 고심 끝에 KCGI와 손을 잡았다. DB하이텍 2대 주주인 KCGI 지분을 전격 인수하기로 한 것.

DB는 지난해 12월 28일 KCGI의 투자목적회사 캐로피홀딩스로부터 DB하이텍 주식 250만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로 총 1650억원에 양수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DB하이텍 최대주주인 DB 지분율은 12.42%에서 18%로 늘고, KCGI 지분율은 7.05%에서 1.42%로 줄었다. 즉 DB가 사들인 KCGI의 지분은 5.6%가량이다.

KCGI가 줄기차게 요구해오던 지배구조 개선, 주주친화 정책을 담은 경영 혁신 계획도 내놨다.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을 분리해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는 한편,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외이사를 각 위원회 의장으로 선임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또한 DB하이텍은 자사주 비중을 15%까지 확대해 순이익의 30% 이상을 주주들에게 환원하기로 했다. 실제로 올 5월 7일 200억원 규모 자기주식취득 신탁계약을 삼성증권과 체결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앞서 지난해도 1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매입한 바 있다. 이번 자사주 취득으로 DB하이텍의 자기주식 지분율은 6.14%에서 7.14%로 늘어난다.

DB 움직임도 활발하다. 올 들어 DB하이텍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고 있다.

지난 2월 19일 DB하이텍 지분 20만1000주를 99억원에 사들이며 지분율을 18%에서 18.45%로 높였다. “경영권 안정 목적”이라는 것이 DB 측 설명이지만 결국에는 지주사 전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DB가 주주환원책을 쏟아냈음에도 시장에서는 소액주주 반발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DB그룹이 지주사 전환에 성공하더라도 DB하이텍 실적이 계속 부진하고 신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KCGI를 비롯한 주주들이 또다시 반발할 수 있다. DB하이텍은 소액주주 비중이 70%에 달한다. 김남호 회장이 보유한 DB하이텍 지분은 전무한 데다 김준기 창업회장 보유 지분도 3.61%로 미미하다.

“DB하이텍 실적이 계속 부진하고 주주환원책도 시원찮으면 소액주주들이 손잡고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다. DB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을 끝낸 KCGI도 여전히 1%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 또다시 대립 국면을 형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59호 (2024.05.15~2024.05.2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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