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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법적 효과 넘어서는 학폭 가해자의 '사과 한마디' [노윤호의 記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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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윤호 변호사, 이지원 기자]

학교폭력 제도들이 개선되고 있다. 가해학생의 학폭 기록을 대입 입시에 반영하고, 가해·피해 학생을 즉시 분리하는 등 학폭을 뿌리 뽑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됐다. 끊이지 않는 학폭 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다. 하지만 이런 제도의 개선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가해학생과 가해학생 부모의 진심 어린 사과다. 사과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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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학폭을 저질렀다면 피해학생과 부모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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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에게 벌어진 일이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는데, 식당 주차장에 세워놨던 자동차의 문이 긁혀 있었다. 자국을 보니 옆 차에서 내리던 사람이 부주의하게 문을 열어젖힌 탓에 필자의 차를 찍은 거였다. 차주車主가 남겨놓은 연락처로 전화를 걸어 '긁힘' 이야기를 건네자 얼마 후 차주가 나왔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나타난 그는 사과 한마디 없이 "우리가 차 문을 긁은 게 맞냐"며 따져 물었다. 긁힌 위치가 차 문을 열었을 때의 위치와 정확하게 일치하자 더는 부인하지 못했다.

무례한 그의 모습을 참지 못하고 필자가 "사과부터 하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차주는 "잘못한 건 맞는데 죄를 지은 건 아니지 않느냐"면서 되받아쳤다. 그가 사과만 했어도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지만, 필자는 보험처리 절차로 일을 넘겨버렸다.

갑자기 이 일을 꺼낸 덴 이유가 있다. '사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지나가다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혀도 사과를 한다. 의도치 않은 행위였더라도 상대방이 피해를 호소하면 나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것이니 자연스럽게 사과하는 거다.

하지만 최근 우리 사회는 '사과에 인색한 사회'가 돼버렸다. 운전하다가 붙은 사소한 시비가 폭력 사건으로 이어지고, 버스 등 대중교통에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고도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왜 사과하려 하지 않는 걸까. 사과에 인색한 이들은 흔히 "사과하려고 했지만 발끈하는 상대방 때문에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고 항변한다. 상대방에게 원인을 떠넘기는 건데, 사실은 '내 자존심' 때문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설사 상대방이 내 잘못에 과하게 반응했다고 해서 내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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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필자가 전문변호사로서 몸담고 있는 학교폭력(이하 학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사과 한마디만 했다면 쉽게 풀렸을 문제도 사과 한마디를 하지 않아서 큰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부모의 괜한 자존심이 자녀의 문제를 크게 키운다는 거다.

실제로 학폭 피해학생의 부모들은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가해학생 측이 사과하지 않아서 학폭 신고를 염두에 두고 있다." "가해학생 측이 사과만 했더라면 이렇게 처벌 절차를 밟지는 않았을 거다."

가해학생 측이 사과 한마디만 했더라면 크게 번지지 않고 조기에 마무리할 수 있는 학폭 사건도 많다는 방증이다. 그래서 필자는 '적절한 때에 사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응당 사과해야 할 가해학생 부모는 어떤 심리 때문에 사과하지 않는 걸까. 학폭 문제에 있어서 사과는 왜 그토록 중요할까. 두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첫째, 자녀가 학폭 가해자라는 걸 담임선생님이나 학교로부터 접했을 때다. 아직까진 피해학생 측이 학폭 신고를 하지 않은 단계다.

"피해학생 부모가 연락이 와서 (가해학생에 대한) 지도를 요청했다." "(가해학생이) 피해학생을 속상하게 한 일이 있어서 학교에서 지도를 했다." 학교로부터 이런 소식을 접한 가해학생 부모 중 상당수는 굳이 재차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님이 아이에게 사과를 시켰고, 서로 화해했는데 또 사과를 해야 하냐는 거다.

하지만 필자는 이때가 피해학생에게 사과해야 하는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선생님이 시켜서 한 사과가 아니라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사과여서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피해학생의 부모가 염려하는 건 '학폭 재발'이기 때문이다.

둘째, 학폭 신고가 접수된 후 자녀의 학폭 가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다. 이럴 때 가해학생 부모들은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녀가 학폭을 저지른 건 분명 잘못이지만, 자녀를 타일러볼 새도 없이 신고를 당했기 때문이다.

'먼저 연락이라도 주지 어떻게 아무런 이야기 없이 신고부터 했지'라며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너무하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래서인지 가해학생 부모들 중엔 "아무것도 모른 채 신고를 당하고 나니 (피해학생 측에) 사과할 마음이 쏙 들어간다"며 "신고를 했으니 법대로 대응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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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가해학생 측이 사과하지 않아서 문제가 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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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럴 때에도 역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가해자 부모에게 조언한다. 피해학생 측이 아무런 말 없이 신고했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생기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사과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진심 어린 사과로 화해의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 그러니 부모의 자존심 때문에 자녀의 문제를 키우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조기에 해결할 수 있던 일이 2~3개월 학폭 절차로 이어지면 그 과정에서 자녀도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과는 결국 상대방과 나, 그리고 내 자녀 모두를 위한 해결 방법의 첫 단계다.

노윤호 법률사무소 사월 변호사

yhnoh@aprillaw.co.kr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 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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