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이송 후 4시간 응급 수술
유럽서 정치 양극화 가장 극심
내무장관 “사실상 내전 임박”
총리 피격 사건이 불거진 슬로바키아가 극명한 정치 분열에 휩싸였다. 유럽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양극화가 심한 슬로바키아는 사실상 내전이 임박한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15일(현지시간) 발생한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의 피격사건 직후 슬로바키아 여야 정치권은 극단적 입장을 앞세워 대립 중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에 따르면 마투스 수타이 에스토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정치권과 언론 모두 상대 진영에 겨냥한 증오 퍼트리기를 중단할 것을 호소한다”라며 “우리는 지금 내전 직전이다”고 말했다.
BBC와 프랑스24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동북쪽으로 150㎞ 떨어진 핸들로바 지역에서 피초 총리가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가 5발 정도를 발사했고, 피초 총리가 이 가운데 3발 이상을 복부와 가슴 등에 맞았다.
구급대는 피초 총리를 인근 도시인 반스카 비스트리카 병원으로 급히 옮겼고, 약 4시간의 응급수술이 진행됐다. 피초 총리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초 총리를 향해 총을 발사한 혐의로 체포된 71세 작가.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핸들로바(슬로바키아)/로이터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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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 현장 영상에는 경호 요원이 총을 맞은 피초 총리를 차에 급히 태워 이동하고,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건 용의자가 경찰에 제압되는 장면이 담겼다. 백발의 남성 용의자가 수갑을 찬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투스 수타이 에스토크 슬로바키아 내무장관은 “총을 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는 71세 작가”라며 “이번 암살 시도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 방송사들도 용의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말하는 영상 녹화분을 입수해 보도하기도 했다.
해당 용의자는 ‘폭력 반대 운동’이라는 정치단체를 설립한 이력이 있는 한편, 8년 전에 남긴 동영상에서는 이민과 증오, 극단주의에 대해서 우려를 표하면서 “유럽 정부는 이 혼란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발언했다.
이날 피격된 피초 총리는 앞서 2006∼2010년 첫 번째 임기에 이어 2012∼2018년 연속 집권했다. 작년 10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여론을 등에 업고 승리하며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번이 세 번째 임기다.
로베르토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가 핸들로바에서 1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이 지역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았다. 핸들로바(슬로바키아)/AP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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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 정치권에서는 사건 직후부터 “정치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등 정국 혼란이 시작했다. 화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분열돼 사실상 ‘내전 상태’라는 분석마저 이어졌다.
피초 총리와 연정을 구성한 국민당의 안드레이 단코 대표는 야당을 향해 “이제 만족하느냐”며 “정치 전쟁을 시작할 것”이라고 격분했다. 피초 총리가 이끄는 사회민주당(스메르)의 루보스 블라하 의원은 “당신들의 증오 때문에 총리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며 야권을 비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각에서도 정치권을 겨냥해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해달라고 요청 중이다. 미국 정치신문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주자나 카푸토바 슬로바키아 대통령은 “우리가 목격하는 증오 수사는 증오 행위로 이어진다”라면서 상대 정치인을 적대시하는 독설을 중단하자고 말했다.
로베르트 피초 슬로바키아 총리는 지난해 10월 친러시아 여론을 등에 업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번이 세 번째 총리 임기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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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바키아는 1989년 동유럽에 확산한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공산정권이 붕괴한 후 내내 정치 분열을 겪어왔다.
피초 총리는 작년 10월 강력한 반이민 정책 등을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했고 자신을 기소한 경찰 지도부를 제거하는 등 ‘정치 보복’에 나서 비난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정부를 비난하는 언론을 비난하며 공영 TV와 라디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안을 폐기하고 대러시아 제재를 종료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외국에서 지원받는 비정부기구(NGO)를 외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간주해 '외국 대리인'으로 분류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부패 처벌을 완화하는 형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서유럽 자유주의 국가 및 친유럽연합 단체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투데이/김준형 기자 (junior@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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