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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美, 중국산 칩·배터리 원천봉쇄···中 "필요한 모든 조처 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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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무역전쟁 격화]

◆ 범용 반도체 관세 2배 인상

對中 반도체 견제 구형으로 확장

대선 의식 철강·알루미늄도 올려

소비재 물가 자극해 인플레 우려

中 "WTO 규칙 위반" 즉각 반발

보복관세 등 맞불대응 나설 듯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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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대중(對中) 고율 관세를 전기차(EV), 레거시(범용) 반도체, 배터리 등의 분야로 전면 확대한 것은 미국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중국과 사실상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자국 산업을 육성하는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한 만큼 무역장벽을 더 높이 쌓아 기술 격차를 벌릴 시간을 확보하는 한편 중국의 발전 속도를 늦추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중국도 강력한 맞불 조치를 검토하면서 전략산업으로 무대를 옮긴 미중 무역 전쟁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14일 백악관이 전격 발표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이번 대중 관세 인상은 크게 청정에너지(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핵심 광물), 반도체, 바이오(인공호흡기 등 의료용품), 철강·알루미늄 등으로 나뉜다. 대부분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한 첨단산업 또는 국가기간산업이다.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제품의 장악력이 높아지는 분야들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경우 관세가 25%에서 100%로 4배나 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저가 공세를 무기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원천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백악관은 “중국의 광범위한 보조금과 비시장 관행에 따른 과잉생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면서 “2022~2023년 중국산 전기차 수출은 70% 증가해 다른 투자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기차의 핵심 공급망이라고 할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7.5%→25%), 배터리 부품(7.5%→25%), 천연흑연·영구자석 (0%→25%), 특정 핵심 광물(0%→25%) 등의 관세도 줄줄이 상향됐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어 고율 관세를 통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조치다.

특히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5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은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중국 반도체 전 분야로 확대된다는 점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가 주시해야 할 사안이다. 레거시 반도체에 대한 관세는 우선 2025년까지 한시적으로 기존 25%에서 50%로 2배 오른다. 바이든 정부가 그간 첨단 반도체 및 장비의 수출통제에 주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미국이 내세운 ‘마당은 작게, 담장은 높게(small yard, high fence)’ 원칙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데이비드 페이스 신미국안보센터(CNAS) 선임연구원은 니혼게이자이신문 기고에서 “레거시 반도체는 가전제품·자동차·비행기·방위산업에 쓰이기 때문에 전 세계 반도체 무역에서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레거시 반도체의 무역을 제한하는 것은 미중 디커플링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 밖에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7.5%에서 25%로 대폭 인상한 것은 미국의 제조업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올해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읽힌다. 미국에 수입되는 중국산 철강과 알루미늄 물량은 미미하지만 이번 조치는 스윙스테이트(경합주)로 꼽히는 펜실베이니아의 블루칼라 노동자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펜실베이니아를 찾아 직접 철강 관세 인상을 지시했으며 백악관은 이날 “미국 노동자들을 중국의 불공정 관행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정부가 이처럼 2018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더 강력한 관세 정책을 꺼내 들면서 중국의 거센 반발과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미국 발표가 전해지기 직전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한 일방적 관세 부과에 반대해왔다”면서 “(중국은)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미 ‘보복관세’ 적용이 가능한 ‘중국판 슈퍼 301조’를 만들어 정면 대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26일 중국 제품에 고관세를 매긴 나라의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한 새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올 12월부터 가동되는 새 관세법은 17조에 중국과 특혜무역협정(PTA)을 체결한 시장이 고관세를 부과하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상대국 상품에 동등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대중 관세 폭탄이 물가를 자극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자동차·가전제품 등에 폭넓게 쓰이는 레거시 반도체의 경우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데다 중국산의 비중이 높다.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미국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관세율 인상은 이미 인플레이션으로 큰 타격을 입은 소비자들이 마주할 가격에 상승 압박을 더할 수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신중히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윤홍우 특파원 seoulbird@sedaily.com베이징=김광수 특파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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