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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역대급 엔저에 일본 제조업 ‘호황’…한쪽서는 “기업들 비명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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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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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비명이 들린다.”



최근 역대급 엔화 가치 하락 현상과 관련해 고바야시 켄 일본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9일 일본 기업들의 고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데 대해 “협력적 개입이든, 위장 개입이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망 있는 경제 환경을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강한 톤으로 정부 구실을 주문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2일 전한 도쿄 오타구의 한 자동차 부품 생산 공장 상황은 달러당 엔화 가치 하락으로 특히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들의 현장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이 회사는 플라스틱 성형 가공 기술을 장점으로 하는데,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불안정으로 유가가 급등하며 원자재 구매 비용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생산 공정 효율화와 제품값 인상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던 찰나, 엎친 데 덮친 격의 급격한 엔저로 또 한 번 쓰나미급 타격을 입게 됐다. 이 회사 다케모토 모리야 사장은 “올봄 직원 임금을 올려주기는 힘들 것 같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일본 시장조사기관인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엔저로 어려움을 겪다 회사를 접은 곳이 56곳으로 전년 대비 1.5배로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내수 산업 중심인 중소기업들이 고통을 많이 받고 있다. 수입 원자잿값 상승과 엔저가 ‘쌍끌이’로 기업에 부담을 주는데, 제품값 올리기조차 어려운 기업들은 숨 쉴 틈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실제 지난해 물가 상승 탓에 도산한 기업도 전년 대비 1.7배인 684건에 이른 것으로 파악됐다.



일단 위기를 버티고 있는 회사들도 몸을 움츠리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재무성 법인 기업 통계를 인용해, 자본금 1천만엔 이상~1억엔 미만 중소기업이 보유한 현금·예금이 지난해 말 기준 141조엔(1240조원)으로 10년 전과 견줘 1.7배나 상승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 신문은 “중소기업이 현금·예금을 쌓는 모습에서 경기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다만 엔저 현상으로 피해를 보는 기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내 전체 기업으로 봤을 때는 잃는 것보다 오히려 얻는 게 많다는 견해도 있다. 실제 지난 3월 집계된 2022년 일본 상장 제조업의 순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는데, 경제계는 주요 원인의 하나로 엔저 현상을 꼽고 있다. 지난 8일 2023년 실적을 발표한 도요타자동차가 매출액 45조엔(395조7천억원·전년 대비 21.4% 증가), 영업이익 5조3500억엔(96.4% 증가) 등 사상 최고 성적을 낸 게 대표적이다. 일본 티비에스(TBS) 뉴스는 이날 “실적 배경에 신차 판매 증가와 함께 엔저로 인해 영업이익이 늘어난 것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고 풀이했다. 당시 사토 고지 도요타자동차 사장은 “이렇게 차를 만들어서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일본 산업계가 6가지 어려움을 호소했던 사안의 하나가 ‘엔고’였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에 엔화 가치 하락을 요구했던 것도 일본 기업들이었다. 이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현재 상황을 ‘나쁜 엔저’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며 엔저와 엔고 모두 지나치면 안정적인 기업 활동과 소비 활동을 방해한다”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엔저 효과’를 최대한 살리는 경제구조 개혁”이라고 짚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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