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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상영관 싹쓸이야말로 범죄도시”...‘범죄도시4′ 박수받지 못하는 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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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천만 만들기

배우 마동석 주연의 영화 ‘범죄도시4′가 오는 15일쯤 1000만 관객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도시4′ 관객은 11일 현재 945만명. 11일 토요일 하루 32만8000명을 동원했다. 직전 토요일(69만명)의 절반 정도로 줄었으나 1000만 달성은 무난하리라는 관측이다. ‘범죄도시4′가 1000만 관객을 기록하면 시리즈 2~4편 3연속 천만 영화가 된다. 한국 영화 최초다. 천만 영화 탄생은 영화계 전체가 반긴다. 특히 코로나 이후 OTT에 밀린 극장가의 흥행력을 입증한다는 점에서 경쟁사들도 환영한다. 앞서 천만 영화에 오른 ‘서울의 봄’과 ‘파묘’ 때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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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상영관 독식으로 비판받는 영화 '범죄도시4'가 수일 내 천만 관객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영화관에서 티켓을 찾고 있는 관객의 모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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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4′는 다르다. 업계 시선이 싸늘하다. 좌석점유율(전체 좌석 중 배정된 좌석)이 최대 86%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상영관 싹쓸이로 만들어낸 성적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영화 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 ‘극장이 흥행판을 범죄도시로 만든 결과’라고 비판한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12일 통화에서 “한 영화의 점유율 86%는 폭력”이라며 “관객에게 특정 영화만 보라고 강요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많은 관객이 보길 원해서 점유율이 유달리 높을 수도 있다. ‘범죄도시4′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이 집계하는 좌석점유율과 좌석판매율에서도 드러난다. 좌석점유율은 영화관이 보여주려는 영화, 좌석판매율(배정 좌석 중 판매된 좌석)은 관객이 선택한 영화를 가늠해볼 수 있다. ‘범죄도시4′는 판매율 10%대(100석 중 10여석 판매)에도 상영관을 80% 넘게 차지했다. 판매율이 8~9%로 떨어졌을 때도 60%대를 유지했다. 이는 앞선 천만 영화와 비교해도 지나친 수준이다. ‘파묘’는 판매율 57%였을 때도 점유율은 58%였다. ‘범죄도시3′ 점유율은 최대 76%로 ‘범죄도시4′에 비해 10%포인트나 낮았으며, 판매율이 13%로 하락했을 때 점유율 64%로 떨어졌다.

국내 최대 멀티플렉스인 CGV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운영하던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지점마저 2개관을 ‘범죄도시4′에 내줬다. CGV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범죄도시4′에 과하게 좌석이 배정됐던 것은 사실”이라며 “예술영화 관객이 워낙 적어 부득이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정 영화의 상영관 독점이 이어지면 영화 제작·배급사는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빼앗기고, 관객은 영화를 골라 볼 선택권이 제한된다. 국내 한 배급사 관계자는 “‘범죄도시4′ 독점 때문에 다른 한국 영화는 속수무책”이라며 “‘범죄도시4′가 하루라도 빨리 1000만을 달성하고 내려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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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의균


천만 영화 만들기에 몰두한 ‘범죄도시’ 측이 허위 홍보를 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범죄도시’ 측은 지난 8일 ‘’범죄도시4′가 글로벌한 흥행 질주를 하고 있다’며 ‘해외 흥행 수익 5000만달러’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실제론 ‘범죄도시4′ 월드와이드 총 매출 5778만2295달러(박스오피스 모조 집계, 12일 현재) 중 97%가량이 국내 매출이며, 북미·영국·베트남 등 해외 매출은 약 3%(197만달러)뿐이다. “허위 사실까지 퍼뜨리는 무리한 마케팅으로 영화 산업을 병들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극장의 노골적인 밀어주기에 사실과 다른 홍보까지 횡행하는 것은 코로나 이후 영화 시장이 축소된 탓도 있다. 지난해 극장 매출은 1조2614억원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매출의 66%였다. 관객 수로는 55%에 불과하다. CGV 측은 “시장 상황이 워낙 좋지 않아, 뜰 만한 영화를 밀어줄 수밖에 없다”며 “한국 영화들이 5월 말로 개봉을 미뤄 상영할 영화가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인 이하영 하하필름스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5월 말 개봉은 극장의 ‘범죄도시' 몰아주기 배정이 확실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CGV 논리는 본말을 전도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천만 영화를 만들었던 한 제작사 대표는 “코로나 이후 관객이 특정 영화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심해져 ‘빈익빈 부익부’가 뉴 노멀이 됐다”며 “씁쓸하지만 이런 현실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계에서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을 주문한다. 최대 상영 횟수를 제한하는 상영상한제와 최소 상영 횟수를 보장하는 상영하한제가 동시에 거론된다. 이하영 대표는 “‘범죄도시4′ 사태 재발을 막으려면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에 상영상한제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예술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다양한 영화가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상영 횟수를 제도화하는 방법을 논의해 볼 만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욱 평론가는 “관객몰이를 위해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마케팅 관행 먼저 근절돼야 한다”며 “장기간에 걸쳐 관객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것이 영화 시장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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