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3 (목)

[FreeView] "AI 접수하러 왔다"…지금 '아이패드 프로'와 'M4'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남도영 기자]

테크M

애플 \'아이패드 프로\' /사진=애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애플이 지난 7일 차세대 '아이패드 프로'와 '아이패드 에어'를 공개했습니다. 무려 18개월 만에 새 아이패드입니다. 작년에 신제품이 하나도 없었단 얘기죠. 덕분에 아이패드 매출은 뚝뚝 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일 애플 실적발표에 따르면 올 1분기 아이패드 매출은 55억6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6% 줄었고 시장 예상치(59억1000만 달러)도 크게 하회했습니다.

이번 아이패드 신제품이 엄청 중요하겠죠. 애플은 스스로 '궁극의 아이패드'라고 부르는 아이패드 프로에 상당한 공을 들였습니다. 아이패드 프로는 2018년 이후 디자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는데, 이번엔 확 바뀐 모습입니다. 새 아이패드 프로는 두께가 5.1mm(13인치 모델 기준)로 역대 애플에서 나온 제품 중 가장 얇고, 최초로 OLED 패널을, 그것도 2장을 겹친 '탠덤 OLED'를 도입한 '울트라 레티나 XDR'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습니다.

이처럼 극도로 얇은 바디와 밝고 선명한 화면을 구현하기 위해 애플은 'M4' 칩을 아이패드 프로에 최초로 탑재했습니다. 애플이 'M3' 칩을 발표한 게 지난해 10월인데, 거의 반년 만에 다음 세대 칩을 내놓은 것입니다. M3 맥북을 구매한 저는 뭐가 되는 건가요. 아무튼 한 세대를 건너 뛴 최신 칩으로 아이패드 프로는 '맥북 에어'보다 성능 좋고 '아이패드 에어'보다 가벼운 무게를 자랑하게 됐습니다. 굉장히 이례적인 상황이죠.

이렇게 특별한 아이패드 프로엔 애플의 'AI 전략'이 숨어있습니다. 지금부터 M4와 아이패드 프로에 숨은 애플의 야심을 하나씩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애플의 독특한 개발 방식

이번에 선보인 M4 칩은 TSMC 2세대 3나노미터 공정으로 제조됐습니다. 이 공정으로 칩을 만드는 건 아직까지 애플이 유일합니다. 전 세대 제품에 탑재된 'M2'는 5나노 공정입니다. 나노라는 건 회로 선폭을 나타내는 단위로, 이론적으로 숫자가 낮을수록 좋습니다. 선폭이 얇을수록 더 많은 회로를 넣을 수 있어 반도체 효율과 성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M4는 M2 보다 80억개 더 많은 280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했습니다. 애플에 따르면 M4는 M2가 쓰는 전력의 절반만 써도 동일한 성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테크M

/사진=애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품이 얇아지면 물리적으로 배터리를 넣을 공간이 줄어들겠죠. 그렇다고 명색이 '프로'인데 성능이 낮은 칩을 넣을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능도 좋으면서 전력 효율이 매우 뛰어난 칩이 필요한 겁니다. M4는 M2 보다 CPU 성능이 1.5배 좋다고 합니다. 현재 공개된 벤치마크에 따르면 M4 싱글코어 성능이 'M3 프로' 보다 좋은 걸로 찍히고 있습니다. 겨우 5.1mm 두께의 태블릿에 맥북 프로급 성능을 지닌 칩을 탑재했다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앞으로 애플 제품들은 훨씬 더 얇고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더 얇은 맥북, 더 가벼운 비전 프로가 가능해지는 겁니다.

이런 칩을 6개월 만에 내놓다니 애플은 여전히 괴물이네요.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애플은 제품 디자인과 칩 개발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제조사들은 인텔이나 퀄컴 같은 칩메이커가 칩을 내놓으면 그걸 가져와서 제품을 개발하죠. 근데 애플은 제품 디자인 팀과 시스템 팀이 처음부터 같이 컨셉을 잡고 만듭니다. 디자인 팀이 "다음 아이패드 프로는 더 얇고 가볍게 만들거야. 배터리 성능 유지하게 전력 효율성 높여주고, 디스플레이 밝기는 1000니트 이상은 되도록 해줘"라고 하면 시스템 팀이 "어 그럼 2세대 3나노 공정을 써야겠네. 이 크기에 1000니트 이상 밝기 유지하려면 OLED도 한 장으로 안되겠네. 디스플레이 엔진도 새로 만들도록 할께", 뭐 이런 식으로 디자인하고 칩 만들고 소프트웨어도 개발하고 한다는 얘기입니다.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의 힘

이렇게 만든 칩은 오직 애플 제품에만 쓰입니다. M 시리즈 칩은 클럭 속도가 몇 헤르즈(Hz)인지 얘기를 안합니다. 이런 수치 비교는 의미가 없단 거죠. 칩에 맞춰 제품 스펙이 정해지는 게 아니라, 제품 컨셉에 맞춰 칩이 개발되는 식이라 그런가 봅니다. 애플 제품은 칩 뿐만 아니라 운영체제(OS)와 애플리케이션, 사용자환경·경험(UI·UX)까지 수직 통합된 구조입니다. 애플이 생각한 제품 컨셉대로 A부터 Z까지 다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확실히 이 방식이 제품 완성도 측면에선 좋습니다.

애플 M 시리즈 칩은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신경망처리장치(NPU), 이미지신호처리 프로세서(IPS), 메모리 등을 하나로 묶은 시스템온칩(SoC)입니다. 메모리가 연산 칩과 붙어있어서 병목이 적습니다. 특히 CPU, GPU, NPU가 각자 일을 열심히 할 때 메모리를 더 가져갈 수 있는 통합 메모리 방식이라 각자에게 할당된 방식보다 더 유연하게 메모리를 활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CPU, GPU, NPU 각각의 스펙으로 보면 타사 제품과 비슷할지라도, 실제 사용자가 체감하는 구동 성능은 더 뛰어나다는 게 애플 측의 설명입니다. 한 마디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얘기입니다.

테크M

/사진=애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M 시리즈 칩 성능에 대해 저는 상당히 만족합니다. 인텔 맥에서 M1 맥으로 넘어올 때 그 충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실제 써보면 다른 PC보다 훨씬 빠릿빠릿하단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사용자에 따라서 메모리를 더 늘리고 싶은 사람, 더 강력한 GPU를 쓰고 싶은 사람도 있을텐데, 맥은 애플이 정해준 옵션대로만 써야합니다. 선택의 폭이 별로 없습니다. 옵션을 추가하는 비용도 다른 일반 PC에 비해 매우 높은 편입니다. 메모리 용량만 추가하고 싶어도 칩을 통째로 새로 만들어야 하니 메모리 단가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가성비가 떨어지죠. 그럼에도 애플 제품이 팔리는 건 통합의 편익이 범용의 장점을 넘어서기 때문이 아닐까요.

원조집은 노하우가 남다르다

이번 M4 아이패드 프로에선 인공지능(AI) 성능에 대해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올해 애플은 참 힘들었습니다. 'AI 지각생'으로 찍혔기 때문입니다. 애플 입장에선 상당히 억울할 겁니다. 사실 애플은 AI의 가능성에 일찍부터 주목해온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AI PC에서 가장 핵심은 AI 연산을 처리하는 NPU 성능입니다. M4 칩 NPU 연산성능은 38TOPS(1초에 1조번 연산) 수준으로, M2 16TOPS, M3 18TOPS에서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경쟁 칩이라 할 수 있는 인텔 코어 울트라(11TOPS), AMD 라이젠 8000 시리즈(16TOPS) NPU 성능보다도 훨씬 뛰어납니다. 다만 조만간 선보일 퀄컴 '스냅드래곤 X 엘리트'는 NPU 성능이 무려 45TOPS에 달한다고 합니다. 애플은 이미 진 싸움을 하고 있는 걸까요?

테크M

/사진=애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애플은 TOPS 수치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데이터를 연산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 자신들의 칩에 유리한 데이터를 가져다 연산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대신 애플은 아키텍처 노하우를 강조합니다. 자신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품에 AI를 선도적으로 통합한 '원조집'인 만큼, 그간 쌓인 노하우가 다르다는 겁니다.

애플이 제품에 별도의 NPU를 탑재하기 시작한 건 2017년 'A11 바이오닉' 칩부터입니다. 지금 생성형 AI 붐의 기원이 된 구글의 'Attention is all you need' 논문이 나온 것과 같은 해입니다. 애플 엔지니어들은 이때부터 트랜스포머 모델의 가능성을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애플 '뉴럴엔진'은 그동안 생성형 AI 시대에 대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고, 이번 M4 칩 설계도 이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번 M4 CPU에는 '차세대 ML 가속기'를 심어놨다고 합니다. 실제 AI 연산은 NPU뿐만 아니라 CPU, GPU 등도 함께 사용하고 메모리 대역폭도 중요한데, 애플의 통합칩 설계와 NPU 아키텍처 노하우가 강점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AI, 못 한게 아니라 안 한거?

애플이 그동안 생성형 AI 도입에 주저했던 건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애플이 중시하는 보안이나 사용자 경험 측면의 리스크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해 애플은 '앱 스토어 어워드'를 발표 당시 당해 트렌드로 생성형 AI를 꼽으며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테크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비록 아직 많은 기능들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사용자들은 이를 통해 기술이 실제로 적용되는 모습을 직접 목도함으로써 기술이 지닌 이점과 위험성에 관해 판단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대형 언어 모델은 부정확한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환각' 현상을 보이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AI가 제공하는 답변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드리프트' 현상이 나타난다는 연구도 있다. '챗GPT'는 2022년 1월까지 공개된 데이터로만 학습했다. 나름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지만, 때로는 모욕적이거나 사회적 감수성이 부족한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이 코멘트에서 보듯이 당시 애플은 아직 생성형 AI를 제품에 통합하기엔 설익은 기술로 판단한 듯 합니다. 허나 제 아무리 애플이라도 시대적 흐름을 거스를 순 없겠죠. 최근 애플과 오픈AI의 챗GPT 도입 협상이 막바지에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생성형 AI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원래 애플은 신기술을 빠르게 도입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자기들 방식으로 완벽하게 도입하는 걸 선호하죠. 아이폰에 5G를 도입한 것도 삼성 갤럭시에 비해 2년 가까이 늦었습니다. 근데 2달만에 5G폰 판매량을 따라잡았습니다. 샘 올트먼이 현재 AI 기술을 '흑백 TV'에 비유한 것처럼, 애플이 늦었다고 한들 AI 시대는 아직 초입입니다. 애플의 기술력과 전 세계 20억대 활성 디바이스를 보유한 생태계를 감안했을 때 또 한 번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습니다.

다시 뛰는 애플

이번 아이패드 프로에서 애플이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했다고 봅니다. 사실 최근에 나왔던 제품들은 너무 보수적이라 별로 재미가 없었거든요. 반면 아이패드 프로는 아름다운 디자인, 오버 스펙, 어처구니 없는 가격까지 정말 애플다운 제품입니다. 어디에 쓸지는 좀 고민스럽겠지만, 이런 제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창작자들에겐 영감이 될 수 있겠죠. 욕심은 나지만 손에 넣긴 어려운, 애플은 그런 동경을 파는 것 같아요. 저것만 있으면 나도 프로다워지지 않을까 싶은.(현실은 초고성능 넷플릭스 머신?)

애플은 이번 아이패드 프로 광고에서 모든 크리에이티브 도구를 흡수하겠다는 야심을 프레스기로 표현하려다 된통 혼나기도 했습니다. 애플 같은 마케팅 고수도 실수를 다 하네요. 그만큼 이번엔 의욕이 앞서 나갔단 의미도 되겠죠. 확실한 건 애플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맘 먹고 만들면 이렇게 얇고 가볍고 강력한 AI 디바이스를 내놓을 수 있다, 이걸 과시한 아이패드 프로였습니다.

테크M

애플 \'아이패드 프로\' /사진=애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AI 아이폰'이나 'AI 맥'도 강력한 전성비와 통합 메모리 구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수직 계열화 등 애플 특유의 개발 방식에 따라 상당히 경쟁력 있는 제품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AI 디바이스라는 게 결국엔 강력한 성능과 발열, 전력 소비의 균형점을 잡는 싸움인데, 애플이 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선보인 'AI 핀', '래빗 R1' 같은 AI 전용 디바이스들이 실망스런 완성도로 혹평을 받는 걸 보면, 하드웨어라는 게 하루 아침에 아이디어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여실히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장의 고수 애플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남도영 기자 hyun@techm.kr

<저작권자 Copyright ⓒ 테크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