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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집값 오를 텐데도…강남 건물주들 “재개발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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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 투기세력에 의한 원치 않는 재개발에 원주민 반발

규제 완화 이후 투자 목적 매입 재개발 적극 추진…‘동의율’도 불리
월세 소득으로 노후 유지 주민들 “멀쩡한 집까지 수용…쫓겨날 판”

‘재산권 침해하는 재개발 정비사업 결사 반대.’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 반포1동의 노후 주택단지에는 이런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41년을 거주했다는 A씨 역시 스티커를 붙인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주택공급 확대를 명목으로 한 정부의 재개발 규제 완화가 외부 투기세력 유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재개발에 적극적인 연립·다세대는 전체 동수의 20%도 안 됩니다. 대부분이 강남에서 신축 아파트를 받겠다며 투자 목적으로 유입된 외지인이고요. 그들 때문에 수십년간 살던 원주민이 터전에서 밀려나야 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서울 강남권의 핵심지인 반포1동에서 투자 목적으로 연립·다세대를 분양받은 외지인들은 재개발에 적극적인 반면, 월세 소득으로 노후 생계를 유지하는 원주민들은 재개발을 원치 않는다. 주택공급 확대를 명분으로 규제가 대폭 완화된 탓에 ‘주민들이 원치 않는 재개발’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서초구청에 따르면, 반포1동 내 일부 토지 등 소유자는 지난달 9일 신속통합(신통)기획 재개발사업 후보지 동의서 연번 부여를 신청했다. 연번 부여는 재개발 사업 동의서에 일련번호를 부여하는 것으로, 재개발 사업의 첫 단계다. 이들은 2022년 ‘모아타운’을 신청했다가 주민 갈등을 이유로 반려된 뒤, 민간 재개발로 방향을 돌려 사업을 재추진하고 있다.

단독·다가구 등 통건물 소유자들은 이러한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건물은 반포1동 내 전체 건물의 81%(424개동)에 달한다. 보유 토지 면적도 전체의 75%를 넘어선다. 하지만 건물 한 채를 한 명이 보유하다 보니 인원으로 따지면 전체 소유자의 25%로 적은 편이다. 재개발 사업의 핵심인 ‘동의율’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현재 반포1동에서는 재개발에 우호적인 연립·다세대 가구만으로도 신통기획 후보지 신청(30%)은 물론 조합 설립(75%) 동의율 확보까지 가능하다.

정부의 ‘1·10대책’으로 재개발 노후도 요건이 67%에서 60%로 완화되자,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지막 장벽’까지 무너졌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반포1동재건축반대비대위원회가 추산한 반포1구역의 노후도는 61% 수준이다. 1% 올리는 데 약 1년이니, 정부의 노후도 규제 완화로 재개발 속도가 7년 정도 단축된 셈이다.

재건축에 반대하는 주민 B씨는 “접도율 같은 전통적인 재개발 규제도 대폭 완화된 상태라 일부 통건물 소유자가 찬성으로 돌아서 토지면적 조건(50%)까지 충족하면 강제수용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민 C씨는 “정부가 토지면적이나 노후도 기준을 언제 더 내릴지 몰라 불안감이 크다”고 했다.

주민들은 외지에서 유입된 투자자들이 재개발 추진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강남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말에 비교적 소자본으로 신축 빌라를 분양받은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반포1동 연립·다세대 99동 중 지어진 지 30년 이상 된 노후동은 20동(20%)에 불과하다. 주민 B씨는 “반포1동에 있는 연립·다세대 건물의 80%는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멀쩡한 건물인데 강남 요지의 아파트를 챙기겠다고 부수자는 건 국가적 낭비”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 공급 확대를 목적으로 사업 추진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계속 풀다 보니 재개발을 원치 않는 집주인들이 동네에서 밀려나는 ‘주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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