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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단독] 중소건설사 부도에 … 준공 기한 약속한 신탁사까지 벼랑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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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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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사의 '책임준공' 보장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문제를 터트리는 새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 책임준공 의무를 떠안은 부동산 신탁사들이 잇따라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하면서다. 회사 보유 계좌에 가압류가 걸리는 사례까지 처음으로 나왔다. 부동산 호황기에 '효자 상품'으로 주목받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 건설사 부실 때문에 신탁회사에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양상이다. 최근 건설 경기 불황으로 다수의 PF 사업장이 부실 위험에 빠지면서 그 불똥이 신탁사에 튀고, 금융권 전반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8일 법조계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23개 새마을금고로 이뤄진 경기도 안성시 물류센터 건설공사와 평택시 물류센터 건설공사의 PF 대주단은 최근 신한금융그룹 산하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책임준공 의무를 어겼다는 이유에서다. 대주단은 손해배상청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같은 금융지주인 신한은행에 신한자산신탁 명의로 개설한 예금에 대해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대주단이 제기한 손해배상액은 총 770억원이다. 두 사업 시행자들은 애초 지난 3월 말까지 물류센터를 완공할 계획이었지만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 대주단 관계자는 "상환하지 않은 PF 대출 원리금에 상당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소송이 마무리되려면 대주단도 막대한 금융비용이 쌓이게 된다"며 "이 건은 신탁회사가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 의무라고 생각해 회사 보유 계좌에 가압류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신탁사의 자산은 크게 신탁자산과 고유자산으로 나뉜다. 신탁자산은 위탁자가 신탁사에 맡긴 재산이라 신탁법에 의해 어느 정도 보호를 받는다. 따라서 가압류를 걸거나 강제 집행을 하기 쉽지 않다. 반면 고유자산은 신탁회사가 자체적으로 가진 재산이다. 쉽게 말해 사옥 임대료를 내거나 직원에게 월급을 줄 때 쓰는 계좌도 포함된다. 대주단 입장에서는 신탁사에 엄청난 '강공'을 펼친 셈이다. 부동산 신탁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관련 소송이 계속 나오고는 있지만 대주단이 이렇게까지 세게 돈을 달라고 한 건 처음"이라며 "본안 소송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어쨌든 치명적인 선례"라고 밝혔다.

2015년 도입한 책임준공형 신탁사업은 신용도가 낮은 지역 중소 건설사를 대신해서 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해 PF 대출을 받을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다. 주로 물류센터나 오피스텔처럼 비주택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많다. 신탁사가 사업비의 2%를 떼가는 고수익 사업이어서 금융사들이 너나없이 뛰어들었다.

부동산 호황기에는 공사 중단 사례가 드물어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부터 건설 경기가 꺾이면서 책임준공형 신탁으로 추진한 다수의 PF 사업이 부실 위험에 직면했다. 특히 시공을 맡은 중소 건설사 파산이 본격화하면서 앞으로 신탁사에 책임준공 의무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인천과 평택 같은 곳에서 신탁사의 책임준공과 관련한 소송이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해 말 기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현장 중 23%가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것으로 파악했다. 이 중 신탁사가 책임져야 하는 곳은 8%로 추산했다. 나이스신용평가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대신자산신탁과 우리자산신탁을 비롯해 7개사의 관련 PF를 분석한 결과다. 이를 토대로 나이스신용평가는 국내 14개 부동산 신탁사의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현장 중 책임준공 기한을 넘긴 사업장 관련 PF는 3조8000억원(신탁사 자기자본의 104%), 책임준공 기한을 넘겨 소송에 직면한 사업장 관련 PF는 1조9000억원(자기자본의 35%)으로 추계했다.

최근 2~3년 사이 책임준공형 사업장이 급증한 만큼 올해부터 만기가 도래하는 사업장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대개 신탁사업 기간은 2년이기 때문이다. '중소 건설사 도산→신탁사 책임준공 불이행→손해배상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사업장이 많이 증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신탁사의 손해배상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를 두고 법적 다툼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도 "소송을 검토해 달라는 요청이 한 번에 2~3건씩 들어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부담 때문에 최근 신탁사의 수익도 급감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서비스에 따르면 작년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전체 당기순이익은 2326억원으로 전년(6426억원) 대비 크게 줄었다. 부채 총계는 2022년 약 1조8143억원에서 지난해 2조8484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책임준공 문제가 단순히 신탁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탁사가 무너지면 자금을 지원한 PF 대주단에 위험이 연쇄적으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신한자산신탁 관계자는 "이처럼 무차별적인 소송이 이어지면 금융권뿐만 아니라 시행사와 건설사 등 개발업계 생태계도 훼손되고 분양받은 사람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동우 기자 /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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