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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9 (수)

휴전 거부 이스라엘, ‘최후 피란처’ 라파에 탱크 진격 “하마스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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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수용’ 휴전안 거부 몇시간후

美 만류에도 라파 검문소 전격 장악

하마스 자금줄 끊고 지상전 공식화

피란민 140만명 다시 생사기로

동아일보

라파 검문소 통과하는 이스라엘 탱크… 당나귀 수레 타고 필사의 탈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지상작전을 개시한 가운데 6일 이스라엘방위군(IDF)은 자국 국기를 단 탱크가 라파 검문소를 통과하는 영상을 공개했다(위쪽 사진). 같은 날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당나귀가 끄는 수레에 살림살이를 싣고 필사의 탈출을 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14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머무는 라파 일대에서 지상전을 전개하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IDF 텔레그램 캡처·라파=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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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7개월을 맞은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6일(현지 시간) ‘최후의 피란처’로 불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최남단 도시 라파에 탱크를 진입시켰다. 하루 뒤인 7일 이스라엘군은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 검문소의 팔레스타인 구역을 장악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군은 같은 날 텔레그램으로 “라파에서 하마스 테러범을 제거하기 위한 대테러 작전을 시작했다”며 지상전 개시를 공식화했다.

이스라엘이 피란민 약 140만 명이 집결한 라파에서 대규모 공격에 나서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대규모 인명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6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통화에서 “라파 지상전을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핵심 지지층인 극우 세력을 의식한 네타냐후 총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상군을 투입했다. 전쟁 발발 후 목표로 삼은 ‘하마스 궤멸’을 달성해 총리직 연장을 노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향후 휴전 협상에서 하마스 지도부를 강하게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삼으려는 의도도 있다.

● 이 “라파는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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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현지매체 하아레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 육군 162사단, 401기갑여단, 특수부대 등은 가자지구 남부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검문소의 팔레스타인 방향 영토를 장악했다. 이스라엘군이 공개한 영상에는 이스라엘 국기를 건 탱크가 포신을 낮추면서 팔레스타인 깃발이 걸린 검문소 시설로 돌진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스라엘은 5, 6일 양일간 라파 일대에 대대적인 공습도 가했다. 이번 공격으로 최소 20명의 하마스 대원이 사망했으며 하마스 땅굴 일부도 파괴됐다고 하아레츠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라파를 가자지구 내 하마스의 마지막 거점이라고 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하마스가 군사력을 재건할 수 없도록 하려면 라파 공격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해 왔다. A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내 다른 지역을 공격해 하마스 24개 대대 중 18개 대대가 해체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하마스가 라파 내 4개 대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재건해 공격을 이어갈 뿐만 아니라 일부 고위 지도부도 이 지역에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이 라파 검문소를 하마스의 자금줄로 여겨 이곳부터 장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비롯한 상당수 하마스 간부는 이집트에서 가자로 들여오는 상품에 20%가 넘는 고율 세금을 물리고 암시장에서 밀수 수수료까지 거둬 큰돈을 벌었다. 자금줄을 끊어 하마스 지도부를 옥죄려 한다는 것이다.

미 정치매체 액시오스는 “이스라엘은 라파 검문소 장악으로 하마스가 여전히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다는 믿음을 사라지게 하려고 한다”고 진단했다.

● 장대비 속 당나귀 타고 필사의 탈출

전쟁 발발 후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 남부 칸유니스 등을 거쳐 라파까지 내려와 천막을 치고 살던 140만 명은 또다시 고통스러운 피란길에 올랐다. 6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공격에 앞서 최소 10마일(약 16㎞) 밖으로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피란민이 한꺼번에 몰리며 현재 라파 외곽으로 이동하려면 택시는 최소 260달러(약 35만 원), 소형 트럭은 130달러를 줘야 하는 상황이다. 당나귀가 끄는 수레는 13달러(약 1만7000원)에 이용할 수 있지만 피란민들은 이 돈마저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대부분의 도로가 가재도구 등 짐이 잔뜩 실린 트럭과 승용차 등으로 뒤엉켜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라파의 알나자르병원이 가자지구에서 유일하게 암, 투석, 소아과 및 응급 치료를 제공하는 병원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 병원이 정상 운영되지 않으면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6일 미 워싱턴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라파 지상전을 ‘새로운 대학살(another massacre)’로 규정하며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했다.

● 美 반대에도 네타냐후 ‘마이웨이’

바이든 행정부의 거듭된 만류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지상전을 결정한 것은 라파 공격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현직 총리 최초로 부패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데다 휴전 협정에 동의하는 것을 ‘하마스에 백기를 드는 것’이라고 보는 극우 연정 내 강경파의 압박을 받고 있다. AP통신은 “공격을 감행하지 않으면 극우 연정이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연정이 붕괴되면 총리직을 상실할 수 있다.

하마스가 6일 휴전 협상안을 수용하겠다고 한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네타냐후 총리가 “우리 조건에 맞지 않다”면서 라파에 탱크를 투입한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치 않다.

이번 지상군 투입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의도도 깔렸다. 이스라엘 소식통은 미 CNN방송에 “이번은 제한된 작전”이라면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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