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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과 ESG 공시 기준, 이제는 이사회의 시간 [더 나은 경제, SD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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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2차 세미나를 열고 그간 거래소를 중심으로 각계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친 기업가치 제고계획 가이드라인(안)과 해설서 초안을 공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기업 개요,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 평가, 소통’ 등의 목차별 기업가치 제고계획 공시 작성 방법이 담겼으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 배당성향, 배당수익률 등과 같은 기업가치 제고 목적을 위한 핵심 지표를 선정하도록 했다. 또 기존 재무제표 지표뿐 아니라 지배구조 등과 같은 비재무 지표도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이번 가이드라인의 특징은 기업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것으로, 경영 여건이 바뀌어 목표 변경을 해야 하면 정정 공시를 통해 목표를 수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강제적인 공시를 통해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취지에서다.

세계일보

기업 이사회 이미지. 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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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기업가치 제고가 해당 기업에 대한 외부 투자 및 주주 의견 등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기업의 전략·재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공시를 작성할 것을 권고했으며, 기업의 사업계획 등 예측 정보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특정인에 대한 선별적 공개 및 홈페이지 공개 등에 앞서 거래소 상장공시시스템(KIND)에 먼저 공시할 것을 권고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세미나에서 “(기업가치 제고계획은) 그동안 사업보고서 등 여러 공시에 산재되어 있는 정보를 기업가치 제고에 초점을 맞춰 재구성하는 종합보고서”라며 “기업이 자신의 미래에 대한 종합적인 모습을 주주, 시장 참여자들과 소통함으로써 투자자가 기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기반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된 한국 기업이 주주, 투자자와 견고히 소통함으로써 가치를 높일 기회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시장의 반응은 다소 차가웠다. 세제 지원방안 등 시장이 요구하는 실질적인 개선책이 언급되지 않은 데 대해 실망감이 컸던 탓이다.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서 세제 지원이라는 인센티브가 필수인데, 이 부분이 거의 언급되지 않자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 해결을 기대했던 시장과 투자자의 기대감도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4·10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등 정부가 추진하려는 각종 세제 개편 방향을 ‘부자 감세’로 규정하고 제동을 걸고 있는 현실 인식도 자리 잡고 있다.

당국도 이러한 상황을 충분히 염려한 탓인지 당시 세미나에서 정은보 거래소 이사장은 밸류업 프로그램과 관련해 “단기간 가시적 성과보다 장기적 기업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긴 호흡을 갖고 지원하겠다”고 강조했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에는 눈에 띄는 일종의 ‘안전장치’가 있다. 경영진과 기업의 자율 노력이 잘 이뤄지는지 계획의 수립과 이행을 전반적으로 감독하고, 필요하면 보고와 심의, 의결을 거치도록 이사회의 역할 강화를 권고한 내용이다.

사실 한국 주요 기업의 이사회는 몸은 회사 밖에, 정신은 회사에 종속된 채로 오랫동안 지배주주 또는 경영진의 서포터 역할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많은 전문가는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을 계기로 이사회가 본연의 임무에 맞게 기업의 건전경영을 유도하고, 주주와 투자자에게 높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지난달 30일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기준을 공개했다. 2026년부터 코스피 상장사를 대상으로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도입될 기후 공시 등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의 초안을 발표했다.

이번 초안은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를 위한 일반 사항(제1호)과 기후 관련 공시(제2호)를 담았으며, 그간 기업이 가장 어려워하던 기후 공시에 관해 ‘온실가스 배출량’과 ‘전환 위험에 취약한 자산 또는 사업활동 정보’, ‘물리적 위험에 취약한 자산 또는 사업활동 정보’, ‘기회에 부합하는 자산 또는 사업활동 정보’, ‘자본 배치’, ‘내부 탄소 가격’, ‘경영진 보상’ 등 7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초안에 구체적으로 명기되지는 않았지만, 사업활동 정보와 자본 배치, 경영진 보상 등은 기업에 따라 이사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야 할 수도 있다. ESG 공시에서도 이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까지 수개월 동안 국내외 많은 기업과 시장 전문가는 기업 밸류업 가이드라인과 ESG 공시 기준이 기업에 또 하나의 규제로 적용되고,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되지 않을 거라는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다. 일정 부분 맞는 이야기이지만,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에서 몰아치는 큰 변화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이해된다.

이 과정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수적인데, 그 중요한 키의 일부는 분명 각 기업 이사회가 가지고 있다. 그간 ‘거수기’라는 오명 아래 제 역할을 못 한 이사회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살릴 기회이기도 하다. 기업의 성장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지속가능한 선순환도 각 조직을 이끄는 주요 리더와 그 구성원(이사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볼 시간이다.

김정훈 UN SDGs 협회 대표 unsdgs@gmail.com

*김 대표는 한국거래소(KRX) 공익대표 사외이사, 유가증권(KOSPI) 시장위원회 위원,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선임협력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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