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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성중의 행복한 북카페] 아무도 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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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성중 소설가


어떤 책들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골목을 품고 있다. 그런 책을 읽는 것은 원래 가려던 길에서 벗어난 샛길 방황이, 이정표가 없는 뒷골목의 산책이 시작되는 것과 같다. 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떠올릴 수 없었을 기억이 선물처럼, 작은 기적처럼 주어진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비비언 고닉이 쓴 에세이집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는 이런 골목길을 무수히 품고 있는 책이다. 인간은 잘 관찰되어 있고, 도시라는 무대에는 매일의 삶들이 다채롭게 변주된다. 책을 통과하다 보면 나에게도 비슷한 순간과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반추하게 된다.

중앙일보

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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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산문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두 남자와 버스에서 쇼핑백을 치우라고 신경전을 벌이는 승객 등 거리에서 보고 듣고 감상하게 된 찰나를 스냅 사진처럼 펼쳐놓았다. 내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아는 사람을 만난 행상인이다. 단조롭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1달라, 단돈 1달라… 반가워, 자기야. 진짜 반갑다. 오늘은 어때… 1달라, 손님 여러분, 단돈 1달랍니다”라며 영업 멘트에 안부를 슬쩍 끼워 넣는다. 인사를 받은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둘은 스쳐간다. ‘하루에 30초씩, 두 사람은 익명의 군중 한복판 깊숙이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것이다’라며 저자는 ‘공연’에 대한 감상평을 덧붙였다.

그런가하면 독특한 느낌을 주는 중년여성을 묘사하며 인생에 대해 상상하는 대목도 재미있다. 총명하고 재능은 있으나 ‘흥미로운 사람’으로 향하는 길 어딘가에서 멈췄고, ‘별난 사람’으로 남았을 것이라 추측하며 ‘오로지 도시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얼굴’이라고 해석한 대목은 쓸쓸하면서도 애틋한 잔상을 남긴다.

좋은 산문집은 좋은 소설책을 읽을 때와 동일한 경험을 선사한다. 모두에게 펼쳐져 있지만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작고 예리한 찰나를 잡아내 전에는 보지 못한 시선으로 톺아보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문학이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아닐까.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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