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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18] 아침에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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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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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인사

안녕하세요

제가 달맞이꽃이에요

아침 안개 속에 있다가 부지런한 시인에게 들켰어요

안개 속에서는 말소리를 죽여야 해요

소리가 멀리 가거든요

조심하세요

나는 곧 꽃잎을 닫을 시간입니다

안녕!

근데,

내가 사랑한다고 지금 조금 크게 부르면 안 되나요?

-김용택(1948~)

내 집 돌담 아래에서도 달맞이꽃이 자란다. 꽃이 피기에는 아직 좀 이르지만 머잖아 필 것이다. 달맞이꽃은 해가 질 때에 피고 아침이 되면 그 생기가 시든다. 달맞이꽃의 빛깔은 곱고 부드럽다. 마치 보름달의 월광(月光)을 동그스름하게 폭 파인 유리 그릇에 한가득 담아 놓은 것처럼.

시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달맞이꽃 핀 것을 보았던 모양이다. 안개 속에서 함초롬하게 핀 달맞이꽃이 시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서 안개가 부옇게 낀 날에는 말을 나지막하게 가만가만히 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둘 사이의 속삭임도, 어떤 고백도 누군가 몰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저만치 갈 수 있기에. 그런데 달맞이꽃은 이내 말을 바꿔 시인에게 말한다. 곧 해가 뜨면 꽃잎을 닫아 헤어져야 하니 자신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미루지 말고, 말소리를 죽이지도 말고 이 자리에서 지금 하지 않겠느냐고. 꽃은 시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고 말았다. 꽃의 아침 인사와 꽃의 밀어(密語)를 들을 수 있는 이 예민한 시심(詩心)은 시인의 가슴에도 사랑의 빛이 만월(滿月)처럼 달맞이꽃처럼 꽉 차 있다는 뜻이겠다.

조선일보

문태준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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