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문을 연 극단 ‘학전’이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매표 수익 100억원을 넘길 만큼 성공을 거두자 2008년 돌연 공연을 중단하고, 돈 안 되는 아동극을 시작한 것은 김민기 아니면 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아동극은 방학에만 올리는 상례를 깨고, 학기 중에도 아동극 상연을 고수했다. 아이들은 학원 가느라 공연 볼 시간이 없으니, 작품을 올릴 때마다 수천만원씩 적자가 났다. 그런데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표값을 더 내렸다. 지인들의 우려에도 그는 “미련하지만 학전 문을 닫을 때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올린 아동극들이 아버지 매에 시달리며 학원을 12개나 다니는 ‘뭉치’가 주인공인 <우리는 친구다>, 실수투성이지만 씩씩하게 집안일을 해내는 형제를 통해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부모에게 따끔한 교훈을 전하는 <고추장 떡볶이> 등이다. 대학로까지 오기 힘든 어린이를 위해 도서지역 폐교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김민기의 ‘고집’ 탓에 적자가 쌓인 학전은 결국 지난 3월 33년 역사를 뒤로하고 문을 닫았다.
‘저항 가수’와 ‘동요 작가’는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평생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쏟은 김민기가 가장 큰 약자인 어린이에게 시선을 놓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 대중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음에도 스스로를 “뒷것”이라 부르며 무대의 거름으로 남기만을 고집한 김민기의 삶이 다큐멘터리로 조명되며 감동을 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어른은 미래세대인 어린이의 ‘뒷것’들이다. 우리는 ‘앞것’인 어린이의 앞을 비춰주는 ‘뒷것’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 학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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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논설위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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