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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英 '총선 전초전'서 보수당 참패…'이민 가정' 출신 런던시장 3선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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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소속된 보수당이 ‘총선 전초전’ 격인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압승을 거둔 제1 야당인 노동당은 수낵 총리를 향해 조기 총선 실시를 압박했다. 올 하반기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할 경우 영국은 14년 만에 집권당 교체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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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 수낵 영국 총리.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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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과 더 타임스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잉글랜드 일부 지역의 직선제 단체장 자리 11석을 놓고 이뤄진 선거에서 노동당 소속 10명이 승리, 압승을 거뒀다. 보수당은 티스밸리 단 한 곳에서만 승리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107개 지방의회의 2636개 의석에 대한 투표도 이뤄졌는데, 노동당이 1140석, 보수당이 513석을 차지해 역시 노동당이 대승했다. 이로써 노동당의 전체 지방의회 의석은 기존 655석에서 1140석으로 늘었다. 키어 스타머 노동당 당수는 “기대 이상의 놀라운 결과”라며 “영국 국민이 노동당과의 새로운 출발을 원한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반면 보수당의 지방의회 의석은 기존 986석에서 513석으로 절반 가까이 쪼그라들었다. 특히 제3당인 자유민주당이 521석을 차지하며 보수당을 앞섰다. 자유민주당이 보수당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한 건 1996년 이후 처음이다.

선거 전문가 존 커티스 스트래스클라이대 교수는 “보수당에는 40년 만에 최악이거나, 그 동급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AP통신은 “이번 선거 결과로 인해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14년 만에 재집권할 것이라는 예상이 더 힘을 얻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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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제1야당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당수.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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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크 칸 런던 시장, 사상 첫 3선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승부처는 런던과 웨스트미들랜드였다. 두 도시 모두 재임에 성공한 현직 시장이 역대 최초 3선에 도전한 곳이다.

수도 런던에서는 노동당의 사디크 칸이 전례없는 ‘3선 시장’ 고지를 밟는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파키스탄 이민자의 아들인 그의 입지전적인 인생 스토리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버스기사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공공주택에 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인권 변호사로 일했고, 노동당 소속으로 2005년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내각에서 교통부 부장관을 지냈다. 2016년 런던 시장에 처음 당선되면서 ‘서구 주요국 수도의 사상 첫 무슬림 시장’으로 주목받았다. 영국 언론이 그에게 ‘버스 기사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이른바 ‘흙수저’ 출신 정치인의 성공담을 조명한 이유다.

칸 시장이 3선에 성공하면서 그의 총리직 도전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반대하며, 보리스 존슨과 수낵 등 보수당의 전·현직 총리와 각을 세워왔다.





AFP통신은 “칸 시장이 궁극적으로 전임자의 전철을 밟아 총리가 되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관측이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존슨 전 총리 역시 런던 시장을 지내며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총리가 됐다.

칸 시장은 4일 개표 결과가 발표되자 “우리는 비방을 일삼는 네거티브 선거 운동에 끊임 없이 직면했지만, 공포 조장에는 진실로, 혐오에는 희망으로, 분열 시도에는 통합으로 응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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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디크 칸 런던 노동당 시장이 기록적인 3선을 차지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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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미들랜드의 보수당 시장 3선 실패



반면 웨스트미들랜드에선 보수당 소속의 앤디 스트리트 현 시장이 3선에 실패했다. 재검표까지 이뤄진 끝에 리차드 파커 노동당 후보가 불과 1500표(0.6%포인트) 차이로 스트리트 시장을 제쳤다.

보수당 내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스트리트 시장의 예상 밖 낙선으로 인해 수낵 총리가 패인을 제공했다는 보수당 지지층의 분노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수낵 총리가 지난해 10월 영국 북부 버밍업에서 맨체스터까지 고속철도 연결의 일부 구간 건설을 백지화하기로 발표하면서 스트리트 시장은 사임 위기에까지 몰렸다. 더 타임스는 “선거 기간 동안 수낵 총리는 이런 논란을 고려해 일부러 스트리트 시장과 거리를 둬 왔다”고도 전했다.

한 중견 의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웨스트미들랜드의 패배로 많은 사람들이 수낵 총리의 현재 노선이 괜찮은지 따져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수낵 총리는 보수표를 다지기 위해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영국에 불법 입국한 난민 신청자를 르완다로 이송하고 대신 르완다 정부에 돈을 지급)을 추진했지만,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 논란 속에 시행이 지연됐다. 영국 해협을 통해 건너오는 불법 이주민은 여전히 급증세다. 비흡연 세대 법안(2009년생부터 평생 담배 구매 금지) 등은 추진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쳤다.





하지만 수낵 총리는 이번 선거 결과에 “실망스럽다”면서도 “기존 정책기조를 계속 이어나가겠다는 결심이 두 배로 강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당은 영국을 지킬 수 있는 계획이 없다”며 “우리는 (이민자의) 보트를 막고, 경제를 키우며, 기회를 창출해 이 나라 모든 사람을 번영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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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미들랜드의 앤드 스트리트 시장은 3선에 도전했지만 0.6%포인트 차이로 실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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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은 압승한 기세를 몰아 수낵 총리에게 조기 총선을 촉구하고 있다. 웨스트미들랜드의 파커 당선인은 소감 발표를 하며 “국민이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총선을 원한다는 사실을 수낵 총리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총선은 법적으로 내년 1월 28일 치러진다. 하지만 영국은 총리가 총선 날짜를 앞당길 수 있다. 수낵 총리는 올 하반기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정확한 시기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최근 전국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이 보수당을 20%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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