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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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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국기에 덮인 美 ‘건국 대통령’… 그 옆엔 대학 연합 텐트 1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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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워싱턴대 ‘해방구’ 김은중 특파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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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에서 시위대가 만든 행동 가이드라인이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다. 뒤로 보이는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 장군 동상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덮고 있고, 그 아래로 '대학살의 전쟁에 미친 대학'이라 적혀 있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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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 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에 세워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동상의 머리 부분이 팔레스타인의 전통 두건 '케피예'로 덮이고, 목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달려 있다. 캠퍼스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동상의 모습을 바꿔 놓은 것이다. 동상 아래에는 '팔레스타인에서의 학살을 끝내라' 등의 문구가 적힌 스티커들이 부착됐다. 왼쪽 위는 이 동상의 평소 모습. /EPA 연합뉴스·조지워싱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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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뭉치면 절대 질 수 없다.” “만세 만세(Viva Viva)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은 지옥에 가라!” 1일 오전 찾은 미국 워싱턴 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의 잔디밭 유니버시티 야드가 가까워오자 이 같은 구호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미 전역의 대학에서 지난해 10월부터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의 이슬람 무장 단체)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곳에서도 1주일 전부터 학생들이 텐트촌을 만들고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2일 미 서부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에선 시위가 격화되자 공권력이 투입돼 고무탄까지 발사하며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조지워싱턴대 시위 현장에선 전날 백악관이 부적절하다 밝힌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민중 봉기)’란 구호도 나왔다. 1821년 ‘컬럼비안 칼리지’로 개교한 뒤 1904년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꾼 이 대학은 워싱턴 DC 도심에 있고, 백악관·의사당 등 주요 정부 기관들이 지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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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유니버시티 야드'에 학생들이 철거한 경찰 바리케이드가 쌓여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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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유니버시티 야드'에 시위대 학생들이 모여 성명 등을 놓고 토론을 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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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위의 발화점인 뉴욕 컬럼비아대의 텐트촌은 뉴욕 경찰의 개입으로 모두 철거됐지만, 조지워싱턴대 캠퍼스에는 텐트가 100여 개까지 늘어났다. 당초 대학 측이 워싱턴시 당국에 경찰이 직접 텐트촌을 철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뮤리얼 바우저 시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에는 경찰이 텐트촌 주변을 바리케이드로 둘러싸면서 한때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됐지만 시 당국의 결정으로 경찰은 캠퍼스 밖으로 물러났다. 이후 학생들은 바리케이드를 모두 뜯어 광장 중앙에 무덤처럼 쌓아놓았다. 점점 덩치를 불린 텐트촌 일대는 ‘해방 공간(Liberation Zone)’으로 불리고 있고, 인근 버지니아·메릴랜드주에 있는 대학 학생들까지 몰려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주장은 다른 대학교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의 입장과 거의 일치한다. “정부는 이스라엘에 지원을 끊고, 대학은 (수익 창출을 위해) 이스라엘 관련 회사들에 해오던 투자를 중단하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빼앗은 땅을 돌려주라”는 것이다.

시위 주도 단체는 1993년 만들어진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 모임(SJP)’이다. 이들은 과일, 단백질바, 시리얼, 피자 등 각종 음식과 생수를 비치해 놓고 참여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었다. 매일 아침 빨랫감을 단체로 수거해 처리할 정도로 ‘규율’을 갖춘 커뮤니티로 변모하고 있었다. ‘위생을 신경 쓰고 텐트 근처에서 먹지 말라’ ‘성관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행동 강령도 만들어 대형 화이트보드에 적어놓았다. 시위 학생 상당수가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그물 무늬 케피예(머리에 쓰는 스카프)를 휘감고 있었다.

학교 마스코트이기도 한 조지 워싱턴은 학교를 단합시키는 역할을 해왔지만, 지금은 갈등과 분열의 상징처럼 됐다. 시위 학생들이 캠퍼스의 랜드마크인 워싱턴 동상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팔레스타인 자유’ 구호가 적힌 흰색 스티커를 군데군데 붙여 놓은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라니씨는 “이렇게 평화롭고 원칙이 있는 시위가 어디 있나. 우리를 자극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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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유니버시티 야드'에 공화당 소속 바이런 도널즈 하원의원이 나타나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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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유니버시티 야드'에서 학생들이 현장을 찾은 공화당 하원의원들을 비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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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시가 되자 텐트촌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공화당 연방 하원 의원들이 엘런 그랜버그 총장과 면담을 마친 뒤 찾아온 것이다. 인파가 몰려들어 의원들을 향해 “매카시즘(극우 반공주의)의 후예들” “팔레스타인을 위해 행동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한 학생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군인 바이런 도널즈 하원 의원을 향해 “아이팩(AIPAC·유대인 로비 단체)에서 돈을 얼마나 받았냐”고 했다. 그러자 도널즈 의원은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그 두건과 마스크부터 벗으라”고 받아쳤다. 로런 보버트 의원은 워싱턴 동상을 두른 팔레스타인 국기를 걷어내려다 대학 직원 신분인 시위대에 제지당했다.

학내 시위에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현장과 떨어진 기숙사 식당가에서 만난 한 학부생은 “솔직히 대다수는 관심이 없고, 시위대 중엔 밖에서 섞여 들어온 사람도 많다”며 “자기들 의견만 관철하려 하고 남 얘기는 절대 듣지 않을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했다. 다음 주 시작되는 기말고사 기간에 텐트촌 바로 옆에 있는 로스쿨 등은 소음 때문에 다른 장소를 섭외해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고 한다.

한편 연방 하원은 이날 찬성 320표, 반대 91표로 ‘반유대주의 인식법’을 통과시켰다. 반유대주의를 명확히 정의해 이를 용인한 학술 기관에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민 단체들은 “법이 규정한 반유대주의 행위가 너무 광범위해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받을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상원까지 통과할 경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 여부를 놓고 고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부 UCLA 캠퍼스에선 2일 새벽부터 경찰이 시위대 강제 해산에 나섰다. 전날 친이스라엘 시위대가 난입하면서 양측 간 폭력 사태가 빚어졌던 곳이다. 이 충돌로 15명이 다쳤고 1명이 입원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부터 수백명을 투입해 시위대가 세운 바리케이드와 텐트를 해체하고 농성장에 진입했다. 약 두 시간 동안 경찰과 시위대 간 서로 밀치는 몸싸움이 일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섬광탄과 고무탄 등이 사용됐다”고 했다. 대부분이 철수했지만 언론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뉴햄프셔주 다트머스대에서도 경찰이 65세 교수를 포함한 시위대 90여 명을 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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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국 워싱턴 DC 조지워싱턴대 캠퍼스 '유니버시티 야드' 입구에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붙어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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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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