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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美-사우디 방위협정 초읽기…중동지형 재편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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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몇주내 체결"…블링컨 "완성에 매우 가까워져"

가자 탓 이-사우디 정상화 난항…가디언 "수교 배제한 플랜B 검토"

뉴스1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의 걸프협력회의(GCC) 사무국에서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있다. 2024.04.29. ⓒ 로이터=뉴스1 ⓒ News1 김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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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방위협정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이 방위협정 진척 상황을 직접 확인해 준 데 이어 이를 뒷받침하는 외신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실현될 경우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 중동 지형은 미국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더욱 수세에 몰리는 것은 물론 이란을 발판으로 중동 내 영향력 확대를 꾀한 중국의 외교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1일(현지시간)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최근 미국과 사우디 간 방위협정 협상에 속도가 붙은 만큼 앞으로 몇주 안에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방위협정 체결 시 사우디는 △미국산 첨단무기를 수입하고 △인공지능(AI)·양자 컴퓨팅 산업에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한편 △민간 원자력 산업 육성을 위한 우라늄 농축 허가를 얻게 된다. 그 대신 사우디는 자국 네트워크 구축 과정에서 중국 이동통신 기술을 제한해야 한다.

양국 외교수장도 이번 방위협정에 거는 기대가 상당하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달 29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특별회의에서 방위협정이 "잠재적으로 완성에 매우 가까워졌다"고 밝혔다. 같은 날 블링컨 장관과 회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은 "대부분의 작업은 이미 완료됐다"고 했다. 방위조약 체결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전제로 하는 만큼 지난해 10월 가자전쟁 발발 이후 중단된 양국 대화에 물꼬가 트였다는 해석을 낳았다.

그럼에도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수교 문제는 여전히 방위조약 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 가자전쟁 휴전협상이 공전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중동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이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사우디-이스라엘 간 수교를 물밑에서 중재했지만, 같은 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으로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지자 중동 내 이스라엘 여론이 악화됐고, 관련 논의는 잠정 중단됐다.

사우디는 양국 관계 수립을 위해선 가자전쟁 중단과 팔레스타인 건국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각각 독립된 국가로 병존하는 '두국가 해법'은 양측의 재충돌을 방지할 이상적 방안이지만 가자지구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려는 이스라엘은 이를 극렬히 거부해 왔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현재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피란민이 집결한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마저 하마스 섬멸을 이유로 침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태로 눈돌린 미국·AI산업 육성하는 사우디…국익앞 해묵은 '이·팔 문제' 패싱할수도

이와 관련해 이날 영국 가디언지는 미국 싱크탱크인 중동연구소(MEI)를 인용해 미국과 사우디가 가자지구 휴전과 팔레스타인 건국 문제를 방위협정과 연계하지 않는 '플랜B(대안)'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방위협정 체결을 계속 미루기엔 미국과 사우디가 얻는 손해가 막대하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패권을 거머쥔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이 아닌 인도·태평양으로 눈을 돌린 지 오래다. 이를 위해선 중동의 안정이 필요하고 최대 적인 이란의 팽창을 억제해야 하는데, 사우디가 역내 '큰형님' 노릇을 하기 제격이다. 사우디는 수니파 종주국으로 시아파 종주국 이란과 라이벌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우디 역시 당장은 가자전쟁 발발로 수니파 무장단체 하마스를 동정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협정 체결을 미룰 수밖에 없었지만, 궁극적으론 미국과 밀착하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된다.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AI 산업 육성에 매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첨단 AI 반도체를 들여오기 위해선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미국의 첨단무기를 등에 업고 이란을 수세로 몰면 역내 패권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다만 협정이 체결되더라도 미 의회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사우디의 대표적인 반정부 언론인인 자말 카슈끄지가 2018년 10월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사우디의 열악한 인권을 비판하는 의원들이 여전히 많아서다.

그럼에도 오는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란·중국 견제'란 초당적 명분을 내세워 의원들을 적극 설득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MEI 선임 연구원 피라스 막사드는 "중동에서 중국을 소외시키는 방식으로 사우디와 전략적 동맹을 맺을 수 있다면,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중요한 승리"라며 "당분간 중동을 미국의 영역 안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 같다"고 내다봤다.

seongs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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