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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젖먹이남매 남겨두고 전쟁터 향한 아버지…73년만에 아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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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참전용사 故김희선 일병
횡성전투서 중공군에 맞서다 전사
軍, 신원 확인해 가족에 유해 전달
“부모님 해후 이루도록 합장하겠다”
70대 노인된 아들, 감사의 뜻 밝혀


매일경제

고(故) 김희선 일병의 생전모습. [국방부]


6·25전쟁이 터지자 어린 남매를 두고 자원입대했다가 전사한 20대 아버지의 유해가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2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08년 강원도 횡성군에서 발굴된 6·25전쟁 참전용사 유해의 신원을 고 김희선 일병으로 인해 가족에게 전했다고 밝혔다.

김 일병은 1926년 3월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김 일병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내와 어린 자녀를 두고 1950년 11월 대구의 제1훈련소에 자원입대해 전선에 섰다. 이어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여러 전투를 거친 후 1951년 2월 펼쳐진 횡성전투에서 25세의 꽃다운 나이에 숨졌다.

국유단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국군 전사자를 마을 주민이 직접 묻은 장소가 있다더라’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2008년 4월 발굴에 나서 김 일병의 유해를 수습했다. 김 일병의 아들인 김성균 씨(1950년생)는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으려는 간절한 마음에 2009년 5월에 경기도 양평군 보건소를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했지만 가족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후 국유단은 과거 유전자 분석이 진행됐던 유해 중에서도 특히 전사자가 다수 발굴된 지역에서 유해와 유가족 유전자를 더 정확한 최신 기술로 분석해 올해 3월 이들이 부자 관계임을 확인했다.

이날 국유단은 경기도 양평군의 마을회관에서 김 일병의 유해를 유가족에게 전달하는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열었다.

아들 김성균 씨는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한평생 기다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셨다”면서 “이제 아버지의 유해를 찾게 되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두 분을 합장해서 꿈에 그리던 해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면서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주신 국방부와 국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2일 경기도 양평군 마을회관에서 열린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에서 이근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장(왼쪽)이 고 김희선 일병의 유가족(왼쪽 둘째, 셋째, 넷째) 및 관계관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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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일병의 가족들은 고인은 물론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모두 병역을 마쳐 2005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김 일병의 아들인 김성균 씨는 1970년 5월 육군3사관학교 2기 보병 장교로 임관해 1982년 10월에 전역한 후 양평지역 예비군 중대장을 역임했다. 손자 김진현(1978년생) 씨도 1998년 8월 의무경찰로 입대해 2000년 10월 전역했다.

한편 국유단은 “6·25 전사자의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며 유전자 시료 채취 등 유가족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다. 제공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 신원이 확인될 경우에는 포상금 1000만 원도 지급된다.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지만 거동 불편, 생계 등으로 이동이 어려운 유가족들은 ‘1577-5625(오! 6·25)’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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