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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문화마당] 미소 천사 부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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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2층에는 두 부처님을 위해 마련된 독립전시실인 ‘사유의 방’이 있다. 여기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 두 점이 전시되어 있다. 두 반가상은 똑같이 오른발을 왼무릎에 올리고 오른손은 뺨에 대고 눈은 가늘게 떠 고뇌에 빠진 자세를 하고 있다. 자세는 닮았으나 스타일은 다르다. 한 부처님은 화려한 보관과 옷 주름으로, 다른 부처님은 절제와 검소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두 반가상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없었다. 석 달씩 교대로 전시되다 보니 한 분은 전시실에, 한 분은 수장고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두 부처님을 2층 사유의 방 한자리에 모시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다. 먼저 사유의 방을 설계할 때 두 반가상에게 시선을 집중하도록 설계했다. 이를 위해 반가상 쪽으로 바닥을 1도 기울게 하고 반가상 위 천장을 낮게 드리워 우리의 시선을 한곳으로 집중하게 했다. 또한 고요한 공간 효과를 위해 빛을 한곳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흙과 숯 그리고 옻으로 꾸몄다.

두 반가사유상은 6세기 말~7세기 초에 제작된 금동불상이다. 삼국시대 주조기술의 탁월함을 입증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반가상 형태를 점토로 만든 후 그 위에 밀랍을 덮는다. 부드러운 밀랍의 성질 때문에 쉽게 뗐다 붙였다 하며 반가상의 표정과 미소를 다듬는다. 점토·밀랍·흙 순서로 바른 후 흙이 말랐을 때 열을 가하면 밀랍이 녹아 점토와 흙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동상을 거꾸로 들어 밀랍이 녹은 바로 그 빈 공간에 청동물을 부어 만드는데, 이 주조 기술이 상당히 어렵다.

더욱이 높이 약 80~90㎝ 내외의 불상을 청동으로 제작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쉽지 않다. 밀랍을 완전히 녹이는 일도 어렵거니와 1100도에 달하는 청동 쇳물의 온도를 고르게 유지하기도 힘들다. 온도가 일정해야 쇳물이 중간에 굳지 않고 일정한 두께로 거푸집 사이 공간을 채울 수 있다. 물론 두 반가상에도 쇳물이 한 번에 닿지 않은 흔적이 있다. 반가상만큼 큰 작품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쇳물을 한 번에 붓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입가에 머금은 미소를 구현하는 일이다. 서양 사람들은 기원전 6세기에 이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아르카익 미소라 알려진 어색한 미소는 입만 웃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미소를 지으려면 스마일 마크처럼 입술 근육뿐 아니라 눈가 근육과 뺨 모두 움직여야 한다. 이를 깨닫고 실천한 인물은 그로부터 2000년이 지나 활동한 다빈치다. 다빈치는 모나리자의 미소를 그리기 위해 해부를 통해 입술 근육과 얼굴 근육 전체를 연구했다. 다빈치는 44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해 미소를 만들어 냈다. 미소를 그리는 일은 천재 예술가에게도 버거운 도전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모나리자보다 1000년 먼저 완성된 반가상 미소의 비밀을 풀고자 했다. 박물관은 3D 스캐닝 작업과 미술해부학자의 도움으로 반가상의 나이를 측정해 보았다. 예상과 달리 10살 정도의 어린아이로 측정되었다. 반가상의 미소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르네상스 해부학을 통한 과학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미소였다. 사유의 방에 있는 두 부처님은 신화와 과학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지극히 어렵고 비밀스런 작업 과정을 거쳐 우리 곁에 온 미소 천사 부처님들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서울신문

이미경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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