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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임의진의 시골편지]가랑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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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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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보슬비, 가랑비가 촉촉해. 노랫말 속 가랑비를 아는가. 가수 양희은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민기 곡 말고 김정신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도 한때 방송 금지곡.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가사가 부정적이고 퇴폐적이다.” 당시 금지 사유란다. 그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쉬운 기타 코드 때문에, 통기타를 배우는 초짜들이 애창했던 노래. 봄비 내리고 이 노랠 부르다 보면 ‘아침이슬’까지 철야 밤샘을 하게 될지도 몰라.

양희은은 재수생 시절부터 명동의 YWCA ‘청개구리홀’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선 청년들의 발표회 공연이 열렸는데, 김민기와 양희은 둘도 처음 이곳에서 일면식을 텄단다. 청개구리 공연은 수십년이 지나 김의철 등에 의해 재개되었는데, 나도 가수 김두수형의 청개구리 공연에 무려 찬조 출연을 했다. 명동의 청개구리를 떠난 청년 김민기는 군대와 공장, 농촌을 떠돌았다. 과거 20대 남성 가수들이 군대에 가면 ‘가수 전용’ 도레미탕(콩나물국), 인삼탕(무국), 황우도강탕(고기 한 점 없는 쇠고기국)과 ‘몽둥이찜’을 먹게 되는데, 양희은도 엄마의 양장점에 불이 나고 무너진 생활전선을 홀로 지켜냈다. 초창기 김민기 노래는 양희은 목소리로 널리 번졌다. 때론 심의를 피하려고 양희은의 자작곡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사람 인연이란 참 놀랍고도 신기하지.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나를 닮아 사는 다른 이가 생겨나. 숲도 곁가지를 뻗으면 금세 울창해져. 노래도 인연 따라 흐르다가 모두의 입술로들 번진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산을 쓴 동무들이 걷던 길거리.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으으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 선한 군중들 가랑비 따라서 어디로들 갔는가. 옛 시절의 노래도 잊히고, 가수들도 하나둘 아프거나 보이질 않아.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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