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식의 레츠 고 9988
2022년 사망자는 37만 2939명이다. 교통사고·자살 같은 사고나 심장마비 등의 급사를 제외하면 60~70%가 암을 비롯한 만성질환 사망자이다. 이들은 사망 시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어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마지막 이별에 서툴다. 표현이 어색하다. 병원의 차가운 분위기도 한몫한다. 지난해 전체 사망자의 75.4%가 병원에서 숨졌다.
아쉬움과 후회가 남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걸 풀고 가는 게 품위 있는 마무리이다. 용서를 구하고, 감사를 표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쏟아야 한다. 평소에도 이런 말 하기가 쑥스러운데, 말기 암 상황에서는 더욱 어렵다. 제3자가 도와주면 환자와 가족, 양쪽이 마음을 연다. 누가 그 역할을 할까, 의사? 간호사? 진료에 쫓기는 의료인이 그리하기 쉽지 않다. 가장 적합한 직군은 사회복지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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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의 말기암 257명 인터뷰
서운함·아쉬움·무한애정 쏟아내
3자에게 속깊은 말 하기 쉬워
소통하면 환자·가족 모두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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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환자 257명 인터뷰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사회연구』최신호(44권 1호)에 '말기 암환자의 자문형 호스피스 이용 경험 연구'라는 논문이 실렸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고주미 사회복지사(사회복지학 박사)가 제 1저자이다. 고 박사는 10여 년째 말기 암환자 257명(가족 일부 포함)을 인터뷰했다. 일간지 기자 출신이어서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고 박사는 그 프로그램에 '내 마음의 인터뷰'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터뷰를 편지로 써서 가족에게 전달한다. 그 전에 숨지는 경우도 있다. 고 박사는 2022년『사회복지연구』에 구술 편지 분석 논문을 싣기도 했다. 두 논문과 학회 발표자료를 종합해 마지막 이별을 정리한다.
한 말기암 환자의 손을 남편이 잡아주고 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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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기 암환자는 배우자에게 할 말이 참 많다. 이혼한 전 배우자라도 그렇다. 50대 대장암 환자와 전 아내의 고백이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도 예뻤소. 꼭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기를…. 성격 탓에 이 얘기를 별로 안 했다. '사랑한다, 지금도 사랑한다'"(환자)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내 능력이, 내 노력이 부족했는지 너무 아쉬워요. 당신을 포기하지 않고 곁에 남아있을 거예요. 당신 나으면 제주 크루즈 여행 떠나요."(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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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뒤에 아내를 뒀다니…"
70대 간암 환자는 "회사와 갈등을 빚고 나서 실직하고,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성격이 굉장히 급한데, 남들에게 얼마나 건방지게 보였을까. 다른 사람은 아내와 상의라도 한다던데, 나는 그런 거 없었다. 아내는 내색하지 않고 잘 버텨준, 그런 사람이다"라고 회한을 토로했다. 50대 중반의 담도암 환자는 "지금 와서 보니 제일 중요한 아내는 (내 인생의) 맨뒤에 가 있고, 다음이 자식이다. 엉망진창이다. 그 모든 게 후회된다"고 말한다.
80대 위암 환자의 아내는 한평생의 한을 쏟았다.
"그렇게 억척스레 살면서 그렇게 나한테 모질게 하고 까다롭게 굴더니…. 왜 그랬는지, 미안하지 않은지 궁금하지만 이렇게 누운 사람이 무슨 말을 할까 싶기도 해. 다음 생에는 남 괴롭히지 말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중략) 자식들한테도 앙금이 있으면 다 풀었으면 좋겠어."
다른 폐암 환자의 아내는 "날 위해 조금 더 먹으라고 했는데, 당신이 악착같이 살고 싶지 않다고 (거부)하니 너무 섭섭하더라"고 말했다. 50대 여성 말기 암환자는 "남편은 말하는 게 좀 무뚝뚝하다. 술 안 마실 때 가장 좋아요"라고 말했다.
말기 암환자에게 자녀는 여전히 아픈 손가락이다. 자녀가 어리다면 더 걸린다. 40대 식도암 환자는 "칭찬, 그때그때 못한 거 미안하다. 강해지고 성실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40대 유방암 여성환자는 아들에게 "유치원 때 시키지도 않았는데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더라. 초등학교 때 싫은 내색 안 하고 피아노를 끝까지 마쳐줘서 고마워…. 아직 아들이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을 텐데, 엄마가 벌써 가게 돼 미안해"라며 울음을 터트렸다.
경기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가 걸어가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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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갈때 돼 기쁘게 간다"
50대 엄마를 보내는 대학생 딸은 "엄마 병명(췌장암)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얘기인 것 같다. 이제 잘하려고 했는데, 내가 늙을 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을 줄 알고 여유 부린 건데, 내가 잘 못 해줘서 미울 따름이야"라고 말했다. 60대 대장암 환자는 아내에게 "어머니보다 먼저 가는 불효자가 됐다. 불고기 좋아하니 챙겨드려"라고 어머니를 부탁했다. 어떤 이는 "갑자기 죽는 게 겁이 난다"고 두려움을 표했다. 반면 87세 환자는 "갈 때가 됐으니 두렵지 않아요. 기쁘게 간다"고 했다. 말기 암환자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사랑해"였다. 60대 위암환자는 "당신 이름, 얼굴, 생각,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 당신과 연관된 모든 것을 다 사랑한다"며 무한 애정을 표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이시행된 지 6년 지났다. 30일 기준 35만여명이 고통을 덜 받고 떠났지만, 마음속 응어리를 풀고 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60대 간암 환자는 "아이들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다. 표현을 잘 못 했다"고 말한다. 어떤 환자는 수목장을 준비해 놓고도 아내에게 말도 못하고 끝까지 끙끙댔다. 고주미 박사는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하드웨어(제도)를 만들었지만, 속마음을 전하는 걸 도와주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며 "말기환자라고 해도 여건이 되면 자기표현을 잘한다. 소통하고 떠나면 가는 이도, 남는 이도 평온해진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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