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8 (토)

라이온킹의 ‘내시’로 나온 이 새, 사랑에 눈 먼 킬러였다 [수요동물원]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라이온킹 30주년 특집 1탄

사자왕국의 충성스런 환관 ‘자주’

앵무새와 닮았지만 사실은 ‘코뿔새’

작은 새와 뱀, 박쥐까지 먹어치우는 포식자

올해는 월트디즈니의 만화영화 ‘라이온킹’이 개봉한지 30주년되는 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이야기의 뼈대를 얻어 아프리카 사바나 짐승들을 의인화한 이 작품은 등장 짐승들의 생태와 습성이 사실과 전혀 다른 터무니없는 설정으로 오류와 억지가 넘쳐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원작 만화영화에 이어 뮤지컬, 실사영화, 관련 캐릭터 산업으로 무한 반복·확장하며 월트디즈니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습니다. 라이온킹을 빛냈던 주·조연급 짐승 캐릭터들의 적나라한 속살을 연중 게재합니다. 하쿠나 마타타~

-수요동물원장-

이 앙증맞은 새를 보는 순간 살떨리는 귀여움에 전율할지 모릅니다. 머리에서 꼬리에 이르는 깃털색은 사실주의화가가 작심하고 붓질을 한듯 회색의 파스텔톤으로 물들었어요. 새빨간 눈두덩은 만화 캐릭터처럼 사랑스럽습니다. 포인트는 앙다문 부리예요. 일부러 귀엽게 생겨라 얍~하고 조물주가 주문을 걸어서 갖다붙인 듯 해요. 디즈니랜드의 요정 다크라이드에 딱 어울릴법한 이 새는 왁스빌(Waxbill)이에요. 우리말로는 ‘단풍새’ 또는 ‘밀납부리’라고도 하죠. 앙증맞은 몸집, 그림 같은 몸색깔과 귀여운 얼굴 때문에 애완용 관상조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새장속에 갇혀 사는 새는 안전은 보장되지만 자유를 잃지요. 반면 너른 야생에서 살아가는 새들은 날짐승다운 삶을 영위하되 약육강식의 악다구니 세상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귀여운 왁스빌의 운명은 후자였어요. 그 대가는 혹독했어요. 푸드덕 하늘을 날려는 순간, 다른 새의 부리에 낚아채집니다. 창공의 대자연대신 포식자의 모이주머니에서 탈탈 털려 한줌의 새똥이 돼서 생을 마감하게 됐어요. 우선 동영상(Malamala Game Reserve)부터 보실까요?

흔히 새중에서 맹금류라고 하면 수리·매와 올삐매·부엉이를 먼저 생각하지만, 이 못지 않은 치명적 사냥꾼들도 많습니다. 왁스빌을 사냥한 포식자는 코뿔새의 한 종류인 노랑부리 코뿔새입니다. 왁스빌은 어쩌면 제 둥지에서 삐약거리면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새끼들을 주식인 풀씨를 한움큼 물어가고 있던 길인지도 몰라요. 코뿔새의 큼지막한 부리에 물리는 순간, 그 삶의 서사는 송두리째 파탄납니다. 하늘을 날던 요정새가 그저 한낱 고깃덩이로 전락하는 순간입니다. 어미를 잃었다면 새끼들도 죽은 목숨일 겁니다. 그래도 헛된 죽음은 아녜요. 코뿔새의 부화와 육아를 위한 소중한 에너지원으로 희생됐으니까요.

조선일보

디즈니 애니메이터가 공개한 '자주'의 밑그림./Disney Parks Blo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코뿔새들은 한창 번식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둥지를 치고,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키우려면 그 어느때보다도 단백질원이 필요합니다. 특히 암컷에게는요. 앙다문 부리로 왁스빌의 앙증맞은 몸뚱아리를 흔들며 사냥성과를 뽐내던 수컷은 기다렸다는 듯 암컷에게 건네줍니다. 식도로 넘어간 요정새가 부부금슬을 두텁게 해주는 묘약이 됐네요. 암컷 뱃속으로 넘어간 왁스빌의 몸은 모래주머니에서 탈탈 털리면서 믹서처럼 갈린 뒤 대를 이어갈 영양분으로 흡수되겠죠. 정글에 라이온킹식 해피엔딩은 없습니다. 코뿔새와 라이온킹이 대체 어떤 관계인지 알기 위해 지금부터 30년전을 거슬러올라가 개봉관 스크린앞에 착석해봅니다.

“난~~~~~츠 이고냐 마바기 시바바/시티 움 이고냐마~’

웅장하고 짜릿한 스와힐리어 코러스로 시작하는 서곡 ‘생명의 바퀴(Circle of Life)’가 끝납니다. 아들 심바를 소개하고 바로 왕세자에 책봉하는 의식에 대군 스카가 불참하자 노여워한 사자왕국의 주상 무파사의 노여운 심기를 알아챈 내시 자주는 혀에 감기듯한 언변으로 주군을 다독이려고 합니다. 충신과 간신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는 이 ‘자주’가 바로 코뿔새예요.

조선일보

노랑부리 코뿔새가 개구리를 잡아먹기 직전의 모습./Africa Geographic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직전 작품인 알라딘에서 악당 자파보다 더 얄미운 감초 캐릭터 앵무새 ‘이아고’를 등장시켜 톡톡히 재미를 봤던 디즈니는 이번에는 대중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생김새는 익히 익숙한 열대조류 코뿔새를 의인화해 감초 캐릭터 ‘자주’를 만들죠. 사자 왕국의 흥망성쇠와 복수의 서사를 지근거리에 지켜보며 충심으로 왕가를 섬기는 내시로 그려지죠. 하지만 야생의 코뿔새는 누군가에 충성하지도 헌신하지도 않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날짐승들처럼 철저히 종의 번성을 위해 본능을 발산하며 날갯짓하죠.

조선일보

자주(왼쪽)와 심바가 그려진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순환버스./Disney Parks Blog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덩치에 비해 기괴할 정도로 별나게 큰 부리를 가진 새로는 코뿔새(Hornbill)와 큰부리새(Toucan)가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구분하는게 썩 어렵진 않습니다. 서식지나 아프리카·동남아(코뿔새)와 남미(큰부리새)로 갈려요. 코뿔새는 좀 더 부리가 위로 굽어있고, 부리위에 뭉툭한 뿔 같은 구조로 돼있어요. 이름의 근원이 된 코뿔이죠. 다소 순둥순둥한 느낌의 큰부리새 눈망울에 비해 코뿔새의 눈은 뭔가 우수에 젖거나 음흉한 느낌을 주기도 해요. 코뿔새는 전세계에 약 40종이 있는데, 기본적인 생김새외에 깃털과 얼굴 피부 색깔은 각양각색이예요. 부리와 함께 이 족속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코뿔’은 아주 단단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속이 스펀지처럼 돼있고 공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잡식성이예요. 나무열매를 가지에서 툭 뜯어낸 다음 공중으로 획 던져서 입을 쩍 벌려서 받아먹곤 하죠. 하지만 킬러의 본능을 곧잘 발휘하는 육식조로 봐도 타당할 것 같습니다. 촬영기술이 발달하면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코뿔새의 킬러 본능이 잇따라 포착되고 있거든요. 어스름이 깔리자 활동을 시작하는 박쥐떼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전광석화같이 습격해 박쥐 사냥에 성공하는가 하면, 나무구멍에 둥지를 튼 다른 새의 보금자리를 습격해서 아직 솜털도 돋아나있지 않은 새끼를 끌어내서 낼름 삼키기도 합니다. 맹금류들이 가장 좋아하는 밥반찬인 뱀도 낼름 삼키죠. 코뿔새의 먹방 동영상(The Wild Hunter TV Facebook. Wild Tings)을 한 번 보실까요?

엄청난 스케일을 자랑하는 코뿔새의 부리는 그 자체가 살상병기예요. 멀리선 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앙다문 아래 위턱은 까끌까끌한 톱니바퀴처럼 돼있거든요. 개구리·뱀·아기새·도마뱀 뭐든 그 부리에 잡히는 순간 엄청난 압력과함께 피부가 짓눌러지며 통각이 극대화되는 고통을 맛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렇게 부리에 짓눌리고 뼈는 빠개진채로 식도로 후루룩 넘어가는 거지요. 이런 킬러이자 포식자가 극도로 순화돼 사자 왕국의 충성스런 환관으로 묘사한 디즈니의 상상력과 창조력에 다시한번 감탄하게 됩니다.

수요동물원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65

[정지섭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