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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세대전승 4·3전문가 육성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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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 제주=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 이사장]

"재단 둘러싼 잡음있었기에 첫 상근 이사장으로서 무한한 책임감 느껴"

"4·3 도도한 흐름으로 가고 있어 누군가에 좌지우지되는 상황 이미 지나"

"88년 4·3특별취재반 투입 7500명 인터뷰하는 등 반평생 4·3에 몰입"

"제주도민들 4·3에 대해 개인사보다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있어"

"진상보고서, 희생자심사, 6개 소송 승소, 잘못된 가족관계 개선 등 보람 느껴"

"4·3 극복하고 제주를 복원한 제주역사 자랑스러워해야"

핵심요약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0~17:30)
■ 진행자 : 박혜진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 이사장
노컷뉴스

제주4.3평화재단 김종민 신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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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제주 4·3의 정의로운 해결과 4·3의 세계화 등을 이끌어갈 제주 4·3평화재단 첫 상근 이사장에 김종민 제주 4·3위원회 위원이 임명돼 화제가 됐습니다. 오늘 수요인터뷰는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을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제주 4·3평화재단 첫 상근 이사장이 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김종민> 제가 취임하기 이전에 재단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조금 소란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깨도 무겁고 또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혜진> 지난 4·3 추념식은 총선을 직전에 앞두고 열리다 보니 정치권의 관심이 유독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김종민> 그동안 정치권은 오랫동안 4·3에 대해서 외면을 해 왔거든요. 정치권에서 처음으로 4·3 진상규명 이야기가 나온 것이 1987년입니다.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4·3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약속을 하셨죠. 그때만 하더라도 제주도의 어떤 정치인도 4·3을 입에 담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속마음이 어떻든 간에 4·3을 왜곡하거나 이상한 말을 하면 적어도 선출직은 당선되기 어렵습니다. 그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기 때문에 어떤 정당이 집권을 하든 누가 도지사가 되든 간에 4·3은 도도한 흐름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특정인에 대해서 좌지우지되고 그런 상황은 이미 지났다고 봅니다.

◇박혜진> 이사장님은 36년 동안 4·3의 역사적인 진실 규명,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전면 개정 등을 기록하고 연구하셨기에 4·3 문제 해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분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4·3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종민> 제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거든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현대사의 진실이 밝혀질수록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치부가 드러나기 때문에 역사학에서도 현대사 연구는 금기시되던 시절이었죠.

4·3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다만 어머니로부터 4·3 사건 때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정도만 알고 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제주도에 와서 신문사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것이 87년도입니다.

87년 6월 항쟁이 벌어진 직후인데 그 영향으로 88년도 3월에 신문사에 4·3 특별취재반이 구성이 됐어요. 제가 신문사에 입사한 지 불과 7개월가량 지났을 때입니다. 역사학과를 나왔다고 하니까 자료 수집 정도는 할 수 있겠거니 생각해서 저를 취재반에 포함시켰던 것 같습니다.

얼떨결에 했고 3년 정도 몰입하다 보니 어느 정도 길이 보였고 그때는 10년 정도 하면 제가 어느 정도 진상규명에 다다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장기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길을 따라간 것이 아니고 계속되는 4·3의 과제 그리고 제 스스로 어떤 의제를 설정해서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아둥바둥 하다 보니 세월이 훅 가버렸죠.

4·3 사건은 앞으로 우리가 100년, 200년 정도 논의될 그러한 사건이 아니고 앞으로 1000년이 지나도 제주도에서는 계속 회자될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계속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박혜진> 4·3을 계속 연구하면서 느끼시는 바도 굉장히 많으셨겠어요.

◆김종민> 그렇죠. 제주 사람들이 오히려 4·3을 잘 모릅니다. 많이 알고 있어서 모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죠.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가족사적인 또는 개인사적으로 4·3을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느 날 갑자기 군인들이 와서 집을 불지르고 우리 가족들을 죽였다 딱 이게 4·3입니다. 또 반대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산에서 무장대가 내려와서 우리 가족을 죽였다 이렇게 가족사적으로 생각을 하죠.

그런데 4·3 사건이라는 것은 미군정 시절 미군이 38선 이남 지역을 직접 점령해서 통치하던 3년 사이 그때 발발을 했던 것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전반적으로 바라봐야지 개인사적으로 바라본다면 더 어렵다고 보죠. 4·3을 이제는 총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겠다 생각을 합니다.

◇박혜진> 이사장님께서 연구하던 시절만 해도 4·3은 금기시됐던 사건이었잖아요. 활동하면서 힘든 시간도 꽤 많으셨죠.

◆김종민> 그때는 군사정권 시절이기 때문에 경찰 쪽에서 우리의 뒷조사를 하고 그랬죠.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제가 7500명 가량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2살, 3살 또는 10살 미만의 어린 나이에 4·3을 겪었던 분들의 얘기를 하면 제 아이들의 나이가 그정도 나이였어요. 그리고 제가 그 나이대를 회상하면 너무나 슬픈 사연이어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힘들었죠.

◇박혜진> 반면에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셨습니까.

◆김종민> 제가 생각했던 것 하나하나가 이뤄져 갈 때죠. 7500명 가량을 인터뷰한 이유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지금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지 않겠습니까? 인터뷰를 하고 진상조사 보고서를 썼고요.

희생자 심사를 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위패보관소에 있는 위패의 일부를 떼내라. 저들은 희생자 자격이 없다. 가짜 보고서니까 보고서를 파기시켜라. 이런 주장을 하면서 소송을 6개나 제기했었거든요. 제가 소송 수행자 지정을 받아서 다 승소를 했습니다.

70주년 때는 문재인 대통령께 공개 편지를 썼습니다. 억울한 희생에 대해서 잃어버린 삶, 돌아가신 분들의 생명을 다시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보상을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트라우마 치유센터 같은 것을 만들어야 된다라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께서 그것을 다 들어주셨죠.

가족관계등록부가 잘못된 분들이 많아요. 당시에는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에 비로소 호적 등재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이미 아버지는 세상에 안 계시고, 아버지 형제마저 다 돌아가셨으면 5촌 삼촌, 7촌 삼촌 밑으로 등재되거나 친척이 없으면 어머니 쪽으로 해서 성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요.

당시 대법원장이었던 김명수 대법원장님께 공개편지를 또 썼어요. 대법원장께서 곧바로 다음 날 참모를 통해서 연락을 주셨고 대법원 규칙이 개정됐습니다. 이제는 가족관계등록부 옛날에 호적이라고 했죠.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박혜진> 이사장님이 보실 때 4·3의 해결 지금 어느 정도 와 있다고 보십니까?

◆김종민> 글쎄요. 이건 좀 가늠하기가 어려운데요. 한 30% 정도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박혜진>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고 계세요?

◆김종민> 일단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이건 끊임없이 해야 되는 거죠. 어느 시점에 진상조사 보고서가 나왔다고 해서 그게 완벽할 수가 없는 거고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자료들도 계속 발굴하는 것은 끊임없이 해야되는 것이고요.

그다음 제가 굉장히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이 4·3 연구자들을 더 많이 양성해야 되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교육이 잘 되어야 됩니다. 광주 5·18 같은 경우 희생자가 170명이에요. 우리는 북촌만 해도 벌써 500여 명이 돌아가셨고요. 노형동 같은 경우 600명 가량이 돌아가구요. 그런데 170명이 돌아가신 광주 5·18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알고 계세요.

그런데 우리는 170명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식적으로 희생자로 결정된 분만 1만5000명 가량 되는데 우리 제주도민들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나요. 교육시킬 전문가를 양성해야 합니다.

제가 재임기간 동안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를 꼽으라면 세대 전승입니다. 4·3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일에 제가 앞장 설 생각입니다.

◇박혜진> 4·3폄훼 왜곡 발언들이 끊이지 않잖아요. 전문가 입장에서 이 문제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나요.

◆김종민> 4·3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일부 정치인이나 극우세력의 이런 것들은 현 정부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쭉 있어왔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3명의 국회의원이 당선됐는데 제주4·3특별법도 적어도 5·18특별법처럼 처벌 조항을 만들어서 개정해야 된다고 봅니다.

◇박혜진>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김종민> 제가 4·3 취재를 하면서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된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 80살이면 그 어르신이 당시에 4살에 불과했습니다. 90살의 어르신은 당시에 14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정도의 어린 나이였다는 거죠. 이 어린 아이들을 도와주고 구호해주는 데도 없고 아버지, 장성한 형을 잃고 20대 젊은 어머니와 둘이서 죽기 살기로 살았어요.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을 경우는 보육원에서 자랐거든요. 이런 분들이 좌절하지 않고 끝내 살아남아서 아들, 딸 낳고 손자, 손녀 낳아서 제주도를 복원시켰습니다. 그 고사리처럼 여린 손으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집을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기적적인 일이고 이분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봅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지만 그것을 극복해낸 제주도민들의 역사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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