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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뉴진스와 ‘야만인들’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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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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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세계 최대 기업 인수합병 사례인 ‘알제이알(RJR) 나비스코’를 다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제목은 ‘문 앞의 야만인들’이다. ‘야만인들’은 ‘기업사냥꾼’이라 불리는 펀드매니저와 기업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 그리고 투자자를 가리킨다. 주주와 소비자 등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멀쩡한 기업을 쪼개어 사고파는 행태를 ‘야만’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미국에서 17번째로 큰 회사였던 알제이알 나비스코는 기업사냥꾼들에게 시달리다 식품과 담배회사로 쪼개져 팔린 뒤 별 볼 일 없는 회사로 전락했다.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기업사냥꾼들도 대부분 감옥에 가거나 파산했다. 책 말미에 이 책의 주제를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RJR 창립자와 나비스코 창립자가 다시 살아나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중략)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이 사람들은 왜 공장에서 나오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까. 건설보다 파괴에 더 관심이 많을까. 도대체 이 모든 것들이 사업을 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최근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 간 경영권 다툼도 기업 인수합병 시장에서 벌어지는 ‘야만’을 연상시킨다. 하이브 방시혁 의장은 어도어의 지분 18%를 보유한 민 대표가 풋옵션(지분을 팔 권리)을 이용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민 대표가 무속인에게 방탄소년단(BTS)이 입대하도록 의뢰하는 등 ‘주술 경영’을 했다는 주장도 한다. 반면, 민 대표는 “뉴진스로 실적을 올리고 있는 나를 하이브가 찍어 누르고 있다”고 반박한다. 양쪽의 다툼은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5월에 복귀하는 뉴진스가 이런 혼란 속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활동할 수 있을까. 지난해 케이(K)팝계를 깜짝 놀라게 한 에스엠(SM) 사태도 본질은 경영권 다툼이었다. 이수만 전 총괄과 현 경영진 간 싸움에 카카오와 하이브가 뛰어들면서 에스엠은 만신창이가 됐다. 당시 12만~15만원대였던 에스엠의 주가는 지금 8만원대에 그친다. 카카오는 오너와 경영진이 검찰 수사를 받는 등 더 큰 타격을 받았다.



에스엠 사태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에 터진 이번 사태로 케이팝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진흙탕 싸움이 오래갈수록 그만큼 팬들의 마음은 멀어진다.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사냥꾼들이 기업을 망치듯, 팬들의 마음을 살피지 않는 ‘야만인’들이 아티스트의 미래를 망친다.



이춘재 논설위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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