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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정년 후 낸 책 40권… 1000쪽 동·서양 언어의 계보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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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언어학사’ 펴낸 정광 교수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국어학자인 정광(84)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글이 세계의 다른 문자와 맺은 관계에 대해 모른 채 그저 ‘영명하신 세종대왕이 사상 유례 없는 문자를 만들었다’는 신화 속에 싸여 있는 것이 답답했다.

조선일보

서울 중계동 연구실에서 만난 정광 교수가 최근 출간한 연구서 '동·서양 언어학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한글이 인도와 중국 언어학의 토대 위에서 나온 독창적 문자임을 밝히려 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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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거대한 작업으로 이어졌다. 최근 출간한 총 1000쪽 분량의 ‘동·서양 언어학사(史)’(역락) 2권이다. 인류 언어 연구의 역사를 기술한 저서로 한국인으로선 처음 시도한 것이라고 한다.

정 교수는 “아마 내 최후의 저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고(故)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와 함께 퇴임 후 오히려 더 활발히 연구서를 내는 ‘노익장 학자’로 꼽혔다. 2006년 퇴임 이후 자택 근처 서울 중계동 오피스텔 연구실에 틀어박혀 쓴 책이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 ‘한글의 발명’ 등 40여 권이다. “여기 앉아 있으면 만사를 잊어버리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을뿐더러 몸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그는 “고대 인도에 고도로 발달한 언어학이 있었고, 이 거대한 호수가 동서 양쪽으로 강이 돼 흘러갔다”고 했다. 서쪽으로 전파된 뒤 서양의 그리스·라틴 문법이 나왔다. 동쪽으로 가서는 중국의 음성학과 성운학(聲韻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종은 이렇게 고도로 발달한 인도와 중국의 음성학과 몽골의 파스파 문자까지 깊게 연구했다고 정 교수는 말했다. “국제적인 언어학의 토대 위에 독창적인 형태로 더욱 발전시킨 것이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조음 음성학의 이론에 근거해 초성 글자를 발음기관의 모양을 따 상형(象形)하는 놀라운 자형(字形)으로 만들었고, 모음의 중성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형하는 등 독창적인 글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껏 언어학 관련 책을 쓰는 동안 사촌형인 정진석(1931~2021) 추기경이 준 ‘라틴-한글사전’을 비롯해 산스크리트어, 체코어, 불어, 독어, 일어 사전 등은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이젠 나이가 있어서 또 책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거 우리말에 맞춰 쓴 관용 한문이었던 이문(吏文)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했다. ‘언어 중 공부하기 가장 쉬운 언어와 어려운 언어는 무엇이었나’란 질문에 그는 “가장 쉬운 언어는 자기 나라 말이고, 가장 어려운 언어는 일본어”라고 했다. “일본어는 표기법이 너무 복잡해 평생 마스터하기 불가능할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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