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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책&생각] 출판시장도 할인경쟁 하라는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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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형 서점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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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주요 출판 유통사(서점 및 전자책 판매업체) 9곳에 ‘부당 공동행위’ 시정 명령을 내렸다. 출판단체, 종이책 및 전자책 유통업계, 소비자단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18개 기관·단체가 참여해 2018년 4월에 체결한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 협약’의 시행세칙 내용이 담합이며 시장 경쟁을 제한한다는 이유다. 공정위는 이미 2022년 11월에 이런 내용을 유통사들에 서면 통보했다.



여기서 공정위가 말하는 담합 행위란, 자율 협약 내용 중에서 신용카드사 등 제3자가 제공하는 할인액을 도서 판매가의 15% 이내로 제한한 점, 무상으로 제공하는 이벤트 상품권의 한도를 1천원까지로 제한한 점, 그리고 이런 협약을 어길 경우 출판사의 도서 공급 중단 등 강력한 제재 규정을 두었다는 점이다. 공정위 시각으로 보면 유통사가 도서 판매 시 적용하는 정가의 15% 이내 직간접 할인에 더해 제3자가 제공하는 추가 할인액은 얼마가 되든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벤트 상품권의 한도도 무제한으로 풀어야 한다. 따라서 거래 제한 등의 자율적 제재도 해서는 안 되는 부당 행위다. 과연 그럴까?



당초 이 협약은 관련 기관·단체와 유통사들이 출판유통 질서 확립을 목적으로 상생과 공정의 가치 실현을 위해 자발적으로 체결했다. 2014년의 도서정가제 개정 이후 편법적인 불법 행위와 시장질서 교란에 대응하고자 구성한 민관협의체의 논의를 거쳤다. 또한 출판 유통사 9개 업체가 담합으로 취득한 이득이 없었기에 과징금조차 부과되지 않았다. 문제가 있었다면 과징금이 부과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출판시장 행위를 모두 법률로 정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법률 조항에 담기 어려운 세세한 사항들이지만 업계 내 경쟁 질서 확립 차원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점을 추려 만든 것이 자율 협약이다. 협약에는 베스트셀러 집계 기준을 비롯해, 도서정가제와 관련한 경품 및 사은품 지급 기준, 전자책의 편법 할인을 막기 위한 대여일 기준, 중고도서 판매 제한 기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이 곧 협약 전체의 무효화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시정 명령 이후의 혼란을 막기 위해 출판유통심의위원회 등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보다도 공정위가 문제 삼은 카드사 등의 제3자 할인 제한 및 상품권 제공의 제한은 자칫 도서정가제의 형해화로 이어질 수 있어서 주목된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도서정가제 관련 조항이 2014년에 개정됨에 따라 도서 가격 제도가 더 이상 공정위 소관의 재판매가격유지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 상품과 동일한 잣대로 가격 경쟁을 하라는 행정 명령은 불합리하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가격 할인의 범위를 직접할인과 마일리지 등 ‘경제상의 이익’을 합하여 정가의 15%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를 회피하는 편법 수단이기도 한 제3자 할인이나 이벤트 상품권의 제공 한도도 이 범위 안에 두도록 해야 하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지 가격 할인 경쟁을 촉진하는 일이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7월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문에서도 판시했듯이, 도서정가제는 훌륭한 ‘독과점 방지 장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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