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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순직 소방관 부모들이 함께 여행을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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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순직 소방관 부모들과 마음치유 여행

“이 때(4월 16일)만 되면 10년 전 내 곁을 떠났던 아들이 생각나죠. 마음도 찢어지고요. 자식을 먼저 잃은 부모의 마음은 죽을 때까지 가져갈 수 밖에 없으니깐요.”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이던 안병국(순직 당시 38세) 소방위는 2014년 7월 17일 세월호 침몰사고현장 실종자 수색 업무를 마치고 복귀를 하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기상 악화로 타고 가던 헬기가 광주광역시에 추락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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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국 소방위가 순직한 사고 현장. 2014년 7월 17일 오전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덕동 부영아파트 옆 인도에 추락한 강원소방본부 헬기의 잔해 속에서 소방대원과 경찰관들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날 사고로 헬기에 탑승했던 소방관 5명이 모두 숨지고 인근 버스정류장에 있던 학생 1명이 경상을 입었다./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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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상사였던 안 소방위는 “헬기 정비가 천직”이라며 소방으로 전직했다. 당시 폐렴을 앓고 있던 아버지 안흥수(76)씨를 보살피기 위해 본인이 근무하던 강원도 춘천에서 경기도 성남까지 한 달 여간 오가던 효자였다.

아버지 안씨는 아들을 잃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맺힌다. 안씨는 “4월 16일만 오면 집안이 모두 침통해진다”며 “아들을 잃고 난 뒤 며느리·손자와도 연락이 끊긴 지 오래라서 부모 생각을 많이 해주던 아들이 더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들의 부모들은 마음 속 응어리를 지니고 산다. 이에 소방청은 순직 소방관 부모를 위한 ‘마음치유 여행’을 시작했다. 자녀를 잃은 참척(慘慽)의 아픔을 지닌 이들이 서로 유대감을 쌓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제주도에 이어 올해는 일본 사가(佐賀)현으로 간다. 오는 18일 출발, 20일 귀국하는 2박 3일 일정이다.

이번 여행에는 혈관육종암으로 투병하다 2014년 순직한 김범석(당시 31세) 소방장의 어머니 김현숙(67)씨도 간다. 김 소방장은 2013년 서울 동작구 노량진배수진 수몰 사고에 투입된 이후 혈관육종암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5년이라는 긴 법적 투쟁을 거쳐 순직을 인정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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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소방관이 지난 2013년 노량진 배수진 수몰 사고 현장에 투입되는 사진 /유가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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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김씨는 “소방관으로 온갖 고생을 다했던 아들이 가야 하는 여행인데,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내가 가는게 맞는건지 모르겠다”면서 “같은 아픔을 지닌 분들과 함께 마음 속 깊은 얘기를 나누며 힐링을 하고 싶다”고 했다.

2021년 울산 중구의 한 상가 건물 화재 진압 도중 화상을 입고 순직한 노명래(당시 31세) 소방사의 아버지 노승남(64)씨도 함께 한다. 지난해 제주도 여행에 이어 두 번째 참여다. 노씨는 “처음에는 아들을 잃은 지 얼마 안된 시기라 가고 싶지 않았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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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일 고 노명래 소방교의 영결식이 울산광역시청 햇빛광장에서 열린 모습. 노 소방교는 울산 중구의 상가 화재 현장에서 구조 활동 중 화상을 입고 순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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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씨는 아들을 잃은 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고, 술·담배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됐다고 한다. 아직도 아들이 근무하던 소방서(울산 중부소방서) 앞을 지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노씨는 “지난해 여행을 가서 같은 처지의 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나보다도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었다”며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터놓고보니 움츠렸던 마음도 서서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1998년 대구 금호강에서 급류에 휩쓸린 여중생을 수색하다 순직한 김기범 소방교(당시 26세)의 아버지 김경수(83)씨도 같이 간다. 김씨는 외아들을 잃고 모아온 5억원을 기탁, 아들의 이름을 딴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김씨는 “아들과 같이 효도관광을 가는 게 평생의 소원이었다”며 “순직 소방관 부모님들과 함께 여행을 가게 돼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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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2일 대구 강북소방서에서 열린 '소방 영웅 김기범 장학기금 기탁식'에서 김경수(오른쪽)씨와 김조일 소방청 차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소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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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국 소방위 아버지 안흥수씨는 “여행에 아들의 사진을 같이 가져갈 계획”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마음 한 켠 같이 있을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다고 한다. 아버지 잘 살아 있다고, 그러니 하늘에서 걱정하지 말고 푹 쉬라고.

[안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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