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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만물상] 미용 전문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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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아침 9시부터 긴 줄 -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피부비만성형학회 춘계 학술 대회 입구 ‘전공의 이벤트 상품권 수령처’에 소속 수련 병원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목에 건 전공의들이 줄 서 있다. 이날 학회는 학술 대회에 방문한 전공의들에게 백화점 상품권 3만원을 증정했다. /정해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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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에 처음 간 것은 건강검진 서비스 중 하나인 점 빼기 때문이었다. 호기심에 갔는데 “하면 좋다”는 항목이 많아 추가 요금을 냈다. 요즘 피부과 서비스 목록엔 ‘피부 오마카세’도 있다. 오마카세가 요리 종류와 방식을 셰프에게 맡기는 것이라면, 피부 오마카세는 ‘의사에게 내 얼굴 맡기기’다. 100만원 등 정액을 결제하면 금액 한도 내에서 기본적인 점 빼기, 필러·보톡스, 레이저 등 모든 미용 시술을 받는 식이다. 개인 맞춤형 피부 관리를 받는다는 느낌 때문에 인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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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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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미용 성형 시술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용 성형 강국인 미국이나 남미에서도 한국 기술을 배우겠다고 찾아올 정도다. 서울 강남의 호텔 로비에 가면 얼굴을 붕대로 싸맨 외국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미용성형 시술을 받은 외국인들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해 60만명을 넘었는데, 피부과, 성형외과를 찾은 환자 수가 1, 2위였다.

▶한편으론 미용 성형 강국인 점이 의료 왜곡도 불러오고 있다. 레이저로 점 빼기 등은 어려운 기술이 아니다. 영국은 간호사가 보톡스나 필러, 레이저 시술을 할 수 있다. 미국도 일부 주에서 간호사·레이저 치료사가 미용 의료를 하고, 일본도 간호사가 의사 관리하에 제모 등 레이저 시술을 할 수 있다. 한국에선 의사만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전공이든 모든 의사가 다 할 수 있다. 그러니 갓 의사가 된 일반의나 산부인과 등 다른 과 의사들이 이곳에 몰리고 있다. 전문의 자격이 없어도 세금 공제 후 월 1000만원을 거뜬히 번다고 한다. 이런 의사를 ‘월천 도사’라고 부른다.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미용성형 시술로 의사들이 몰리는 것은 실손보험 증가와 함께 필수의료 붕괴의 원인으로도 꼽히고 있다. 우리도 간단하고 반복적인 미용 시술은 간호사 등 다른 직역에 허용해야 비용도 떨어뜨리고 의사는 ‘의사다운’ 진료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거의 비의료인들이 하는 문신도 법적으론 의사들만 할 수 있다.

▶28일 열린 피부비만성형학회 학술대회에 의대 증원에 반대해 사직 중인 전공의들이 긴 줄을 섰다고 한다. ‘필러 시술법’ 등 미용 시술 강연을 들으려는 행렬이다. 평소에는 일반 개원의가 많았는데, 올해는 전공의 비중이 대폭 늘었다고 한다. 전공의들도 점 빼주려고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줄을 선 그들 마음도 착잡했으리라 믿는다.

[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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