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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윤석열이 사는 길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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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의료 개혁과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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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이번 총선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지만, 선거의 승패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중도파가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전체 득표수 기준으로 2년 전 대선 땐 24만표(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157만표(5.4%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이 차이의 변화가 바로 중도 유권자의 이동에 따른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로 이 중도 유권자들에게 공정과 상식의 수호자처럼 여겨져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들이 등을 돌린 건 그런 믿음을 철저하게 배신한 윤 대통령의 내로남불 행태 때문이다. 특히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 공사 구분 의식이 전혀 없는 내로남불이 결정적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이번 총선은 속된 말로 ‘윤석열이 말아먹은 선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종섭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대사 임명을 발표한 3월4일부터 의대 증원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4월1일까지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이 참패를 당하는 데 도움이 될 여러건의 일들을 했다. 묘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는 왜 이런 묘기를 부렸을까?



나는 윤 대통령이 앞으로 공개적으론 무슨 말을 하건 속으론 이번 참패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 여전히 납득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그간 윤 대통령이 보여온 정치적 지향성과 행태는 거시적인 노선과 정책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도 유권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자신의 일상적 삶과 관련된 미시적인 것들이다.



김 여사 문제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의 정치관에서 볼 때는 그건 매우 사소한 문제이며, 야권의 선전·선동에 의해 부풀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난 2월7일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최악의 ‘대통령 특별대담’을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게다. 그는 ‘김건희 명품백’ 논란에 대해 “시계에다가 몰카를 들고 온 정치공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어떤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은 채 “아쉬운 점은 있다”고만 했다.



아! 주변의 참모와 지인들은 왜 그를 말리지 못하는가? 그가 1월 중순에 나온 당시 국민의힘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았더라면 결코 저지르지 않았을 과오였다. 그는 “(역사학 교수가) 프랑스 혁명이 왜 일어났는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 등이 드러나면서 감성이 폭발한 것이라고 하더라”며 “지금 이 사건도 국민들의 감성을 건드렸다고 본다”고 말해 여권 내부와 국민의힘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샀다. 그의 진짜 메시지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에 가려져 전달되지 않은 비극이었다.



김건희가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게 아니다. 역사란 무슨 거창한 사건과 명분만이 아니라, 매우 사소하게 시작된 일이 야기한 집단적 감성의 폭발에 의해 이루어지거나 바뀔 수 있다는 것, 대통령이 사소하게 여기는 명품백 하나가 윤 정권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게 바로 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의 수준이자 실력이었던 걸까?



김경율 전 위원은 15일 “(그 사건 이후) 많은 당내 인사들이 직간접적으로 ‘인터뷰 자제했으면 좋겠다’ ‘너는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고 언론과 만나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 와서 빤히 쳐다보고 뭔가 감시받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종섭 전 대사, 황상무 전 수석 사태가 일어나자 의원들, 중진들 전화와 문자가 20~30통 왔다”며 그 내용이 “‘네가 나서서 조금 더 이야기해주라’는 것이었다”고 허탈해했다.



중요한 건 바로 이 대목이다. 김 전 위원은 “당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다른 목소리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목소리 자체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윤 대통령 자신이다. 지난해 2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실의 ‘명언’으로 대변된, 대선주자급 당내 인사들에 대한 침묵 강요는 윤 대통령의 ‘불통과 오만’을 상징하는 동시에 윤 정권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 사건이었다. 이제 윤 대통령이 살 길은 딱 하나다. 진정한 소통, 그리고 그 전제인 겸손의 회복이다. 검사 시절 권력의 보복으로 겪어야 했던 가장 비참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오만의 화신처럼 변신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 그게 바로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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