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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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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오마이갓]西紀 기준은 예수님 탄생, 佛紀 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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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기원(紀元), 즉 연대를 계산하는 기준에 대해 생각해볼까 합니다.

올해는 서기(西紀) 2024년, 불기(佛紀) 2568년입니다.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쉬지 않고 흘러가지만 인간은 늘 그 시간에 매듭을 짓고 측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서기, 불기, 단기(檀紀)처럼 어떤 시점을 정해놓고 시간을 계산하는 방법이 아닌가 합니다. 과거엔 왕조가 바뀌거나 황제, 임금에 따라 연호(年號)를 매기기도 했지요. 종교는 힘이 셉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조는 명멸해 연호도 사라졌지만 서기, 불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기와 불기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기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인데, 불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이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저도 종교담당을 맡은 후로도 한참 동안 불기 역시 부처님 탄생으로부터 계산하는 줄 알았습니다. 불교는 왜 붓다의 열반을 기준으로 불기를 계산할까요? 여기엔 불교와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와 불교 사이 세계관의 차이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탄생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이해가 쉽습니다. 누구나 나이를 셀 때에도 태어난 해가 기준을 삼으니까요. 그런데 불교는 왜 붓다의 탄생이나 깨달은 때가 아니라 죽음을 기준으로 삼았을까요? 불교는 왕자로 태어난 싯다르타가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생노병사를 목격한 후 출가해 고행을 겪다가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평생에 걸쳐 길 위에서 가르침을 전하다가 열반에 든 모든 과정을 가르칩니다. 그런 점에서 ‘아기 붓다의 탄생’은 자연인 고타마 싯다르타의 탄생일 뿐, 수행의 완성은 열반인 것이지요. 열반은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貪瞋癡]을 여의고 모든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한 상태입니다. 붓다는 마지막 죽음으로써 열반, 완성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붓다의 탄생이 아닌 열반에 초점을 맞춰 불교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다만 불기의 기준점은 실제 붓다의 입멸 때부터 역사적으로 지켜오는 것이 아니라 1950년대에 세계 불교계가 ‘합의’한 결과라고 합니다. 붓다의 생몰연대는 기록으로 정확히 남아있지는 않거든요.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그해를 붓다 입멸 2500주년으로 ‘합의’했다고 합니다. 즉 붓다의 생존연대를 서기전 624~544년으로 본 것이지요.

불기(佛紀)의 원점을 열반으로 삼을 정도라면 불교의 이른바 4대 축일, 즉 탄신(음력 4월8일)과 출가재일(음력 2월 8일), 깨달음을 얻은 성도재일(음력 12월 8일), 열반재일(음력 2월 15일) 중 열반재일을 가장 큰 명절로 삼을 법도 합니다. 그렇지만 불교 역시 전세계적으로 4대 명절 중 가장 크게 경축하는 것은 부처님오신날(탄생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처님오신날엔 전국 사찰에서 대대적으로 봉축법요식이 열리고 연등회 거리 퍼레이드도 개최됩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으로는 죽음 보다는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일까요? 다만 부처님오신날도 지역에 따라 날짜는 다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승불교 국가들은 음력 4월 8일, 남방불교는 양력 5월의 보름날(베삭데이)을 ‘부처님오신날’로 대대적으로 경축하고 있습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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