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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트럼프의 ‘미국 우선’ 원조는 1930년대 뿌리 둔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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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휩쓸던 1940년, 미 공화 고립주의자들 “미국은 안전하다”며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 발족

푸틴의 유럽 위협에도, 트럼프 공화당은 ‘아메리카 퍼스트’ 주창

국제정치학자 케이건, WP 기고 “1930년대 미국인은 ‘아메리카 퍼스트’ 물리치고, 戰後 ‘가장 위대한 세대’ 이뤘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은 28일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트럼프 공화당이 주창하는 해외 개입 반대ㆍ미국 우선의 고립주의는 1930년대 미 공화당에서 풍미했던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그 당시 미국인들은 이를 물리치고 2차 대전에 참전해 승리로 이끌었기에 당시 미국인 세대가 ‘가장 위대한 세대(1901~1927년생)’로 불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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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케이건


케이건은 ‘밀림의 귀환’ ‘미국 vs. 유럽’ ‘미국이 만든 세계’ ‘돌아온 역사와 깨진 꿈’ 등 저서가 국내에도 다수 소개된 네오콘(neocon)의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다.

그는 1930년대의 ‘아메리카 퍼스트’나 트럼프 공화당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모두 면밀한 검토에 따라 수립된 외교 독트린이 아니라, 자신들이 ‘공산주의’라고 보는 민주당 반대파의 국내 정책에 반발하면서 이를 외교로까지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케이건은 “트럼프 지지세력은 단지 미국에 1930년대 세계관을 다시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곧 터질 2차 대전을 앞둔 1930년대 세계로 미국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그가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것을 정리, 요약한 것이다.

◇히틀러가 유럽 휩쓰는데,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 설립

1940년 9월 예일대 출신들이 주축이 돼서 공화당 민간단체인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가 처음 설립됐다. 히틀러는 1938년 오스트리아ㆍ체코슬로바키아, 1939년 폴란드, 1940년 초에는 노르웨이ㆍ덴마크ㆍ벨기에ㆍ네덜란드를 차례로 점령하고 있었다. 1940년 6월, 영국군은 프랑스의 덩케르크에서 가까스로 철수했고, 프랑스는 독일의 전격작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도 1940년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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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유럽 전쟁에 끼어들지 말고, 미국을 안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자"는 1941년 4월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의 세인트루이스 집회 전단/위키피디아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는 한때 미국 전역에 450개 지부를 두고 80만 명의 회원이 참여했다. 대부분 기업인들과 부호들이 주축이 됐다.

당시 공화당 고립주의자들은 일본의 군국주의 팽창과 유럽의 전쟁에도, 미국은 결코 침략 당할 수 없는 국가로 봤다. ‘미국 불가침’ 주장은 자연스럽게 해외개입 반대로 이어졌다. 일반 미국인들은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도덕주의와 감정에 휩싸여 독일과 일본을 억누르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영국ㆍ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양도하는 ‘뮌헨 협정(1938년 9월)’을 맺은 것을 놓고도, 체코인들이 “낭만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불명예스러워도 현실을 파악한 영웅적 행동을 취했다”고 칭송했다.

네임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나중에 휴지조각이 된 “독일은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히틀러의 육필 서약서를 들어보이며 “이게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다. 집에 가서 편히 주무시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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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와의 뮌헨 협상에서 돌아온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1938년 9월 런던 외곽의 헤스턴 공항에 도착해 '더 이상 영토 야욕이 없다'는 히틀러의 친필 메모를 들어 보이며 "이게 우리 시대의 평화"라고 선언하고 있다./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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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태프트 당시 미 상원의원(오하이오)는 “세상은 온갖 종류의 삶을 충분히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넓다”며 “미국은 민주주의와 이상을 지키겠다며, 떠도는 기사 돈키호테처럼 파시즘의 풍차로 돌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1930년대 공화당이 우려한 것은 공산주의

그때 미국 공화당이 우려한 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공산주의였다. 그들은 막대한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FDR)의 경제 부흥 정책인 뉴딜(New Deal)은 미국에 공산주의를 실행하려는 핑계로 봤다.

공화당 고립주의자들이 보기에,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오히려 유럽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성곽’이었다. 그들이 보기엔 민주당이 구축하려는 ‘진보적 제국(liberal empire)’이 히틀러가 세우려는 것 만큼이나 억압적이었다.

또 공화당 보수주의자들이 믿는 음모론의 중심에는 유대인이 있었다. 그들은 뉴딜도 FDR 주변의 유대계 참모들이 만들어낸 정책이라며 ‘주딜(Jew Deal)’이라고 불렀다. 당연히 유럽 땅에서 유대계가 핍박받는 전쟁에, 미국이 뉴딜러(New Dealers)들의 부추김에 넘어가 개입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미국인들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 이전에도 유럽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의 득세는 미국의 안보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전반을 위협한다고 인식했다. 루스벨트는 1939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인들은 본토뿐 아니라 그들의 교회와 정부, 문명이 기초하고 있는 신념과 인류애를 지켜야 한다”며 “하나(미국)를 구하려면, 모두(세계)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부자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택했지만, 빈곤ㆍ노동자 계층은 루스벨트를 지지했다. 특히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넘어가자, 미국 여론은 영국 지원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1930년대 ‘아메리카 퍼스트’는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의 무기고로 변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은 이런 배경에서 이뤄졌다.

◇’1930년대 보수주의 회귀’ 꿈꾸는 트럼프주의자들

80여 년이 지나, 도널드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우크리아나 지원 반대는 물론, 유럽의 안전ㆍ평화에 대한 미국의 광범위한 약속을 철회하려고 한다.

트럼프는 나토 각국이 GDP의 2%까지 국방 예산을 올리지 않으면, “푸틴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하겠다”고 협박하는 ‘조건부 지원 약속’을 천명했다.

다른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아예 유럽의 나토 국가에 대한 러시아 공격 시 미국이 자동 개입하는 조항을 없애자고 한다. 유럽 주둔 미군도 철수하라고 한다.

트럼프의 공화당이 지향하는 것은 1930년대 공화당이다. 1ㆍ2차 대전 중간기에 미 보수주의자들 사이에 팽배했던 고(高)관세ㆍ반(反)이민 외국인공포증ㆍ고립주의ㆍ2차대전 개입 반대를 특징으로 한 보수주의다.

이를 숨기지도 않는다. 트럼프 재집권 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러셀 보트(Vought) 전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은 “우리가 돌아가려는 것은 (두 세계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더 오래된 형태의 보수주의”라고 말한다.

◇공화당 대통령들이 지켜온 2차 대전 승리의 세계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세계관은 냉전과 그 이후에도 거의 변하지 않고 이어졌다. 아이젠하워ㆍ닉슨ㆍ레이건ㆍ부시 부자(父子)에 이르는 공화당 대통령들도 이를 따랐다. 미국의 이익은 자유민주주의ㆍ자본주의 세계 질서와 부합되며, 미국은 동맹 결성과 수십만 명의 미군 파병을 통해 이 질서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봤다.

오히려 미국의 해외 개입과 관련해 우려를 낳았던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던 지미 카터,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심 이익이 아니다”고 말했던 버락 오바마 등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지금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대표 같은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국의 안보와 핵심 이익에 직접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또 공화당 내 소수파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패배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재선된 트럼프가 힘 빠지지 않게 하려면, 당장 우크라이나에 필요한 무기를 주라”고 주장한다.

◇트럼프주의자의 제1 타깃은 ‘중국 공산당 지령 받는 바이든’

트럼프주의자는 다르다. 우크라이나가 어떻게 되든 관심 없다. 독일ㆍ프랑스를 위해 기꺼이 싸울 생각도 없다. 바로 1930년대 원조 ‘아메리카 퍼스트’의 생각이다.

이들에겐 해외보다 더 중요한 국내 이슈가 있다. 바로 “중국에서 지령을 받는” 진보ㆍ공산주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2020년 대선 이후 공화당 정치인들은 공공연하게 “바이든은 중국공산당 의제를 따른다” “중국 공산당 대통령은 ‘차이나 조(China Joe)’” “베이징 바이든”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주의자들은 2차 대전을 뉴딜러들이 획책해 자기들의 전쟁으로 만들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진정한 미국인이 아닌 ‘진보적 글로벌주의자들’과 ‘네오콘(적극적인 해외 개입을 주창하는 신보수주의자들)’들이 배후에 있다고 믿는다.

두 시대의 ‘퍼스트 아메리카’는 똑같이 이민자 유입에 반대한다. 트럼프는 작년 12월 “미국적이지 않은 인종 집단”이 유입되면서 백인 기독교 국가의 “피를 더럽힌다(poisoning the blood)”고 말했다.

21세기의 ‘아메리카 퍼스트’주의자들이 하는 얘기를 러시아의 푸틴과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 한다. 미 공화당이 이런 독재자들을 칭송하는 이유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은 2013년 푸틴이 “유럽과 대서양 국가들이 서구 문명의 근간인 기독교적 가치를 거부하고, 국가ㆍ문화ㆍ종교ㆍ성(性)에 대한 모든 전통적 정체성과 도덕적 원칙을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때, 그에게 환호했다.

◇’동맹’ 없이 ‘거래’만 있는 트럼프

트럼프 행정부에서 법무장관을 한 윌리엄 바는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에 놓는 최고의 자아도취자(narcissist)”라고 말한다. 이런 자아도취는 유럽에 대한 약속에서 미국을 빼내려는 자들의 목표와 잘 맞는다.

트럼프는 동맹이 없다. 그의 압력에 물러난 로나 맥대니얼 미 공화당전국위원회 전(前) 위원장은 “모든 관계는 트럼프가 언제든지 끊을 수 있는 일방적인 거래다. 더 이상 도움 받을 게 없다고 생각되면, 그 사람은 밀어낸다”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나토와의 관계는, 푸틴ㆍ시진핑ㆍ김정은과의 관계와 같은 가치를 지닌다. 트럼프는 세계를 미국의 우방세력과 그 적들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그를 돕거나 해치는 세력, 아무 영향력이 없는 세력으로 나눈다.

◇’조건부 개입 약속’의 의미

‘조건부 개입’이라는 것은 없다. 미국의 군사 개입 약속이 의문시 되는 순간, 미국의 군사력에 기초해 구축됐던 국제사회의 파워 지형도는 바뀌게 된다. 미국에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모든 국가는 새로운 지도에 적응하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우방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미국을 떼어 놓으려고 하는 트럼프 공화당은 단지 1930년대 세계관으로 회귀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들이 집권하면 미국을 1930년대 세계로 이끌 것이다.

키이우가 함락됐는데도 트럼프와 미 공화당이 무관심하다면, 러시아 군대는 바로 폴란드와 1300㎞ 국경을 마주하게 된다. 유럽은 지정학적 혁명 속에서 선택해야 한다. 발트해 국가부터 폴란드, 핵무기 없는 독일 등은 모두 바뀐 파워 지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러시아에 맞추든지, 러시아의 품에 들어가든지, 미국 없이 맞서야 한다.

푸틴은 2008년 조지아, 2014년 크림반도, 2022년 우크라이나 점령에 이어, 다음 타깃을 노릴 것이다.

미국이 유럽에 대한 약속을 포기하는 것을 본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하기까지 얼마나 더 기다릴까. 또 이를 본 일본은 단 기간에 수백 기의 핵무기를 만들 수도 있다.

“아시아는 유럽보다 더 중요하고, 우리는 두 곳을 다 지킬 수 없으니 유럽을 (외부 군사 위협에) 노출해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다”(엘브리지 콜비 전 트럼프 행정부 국방부 부차관보)는 말이 과연 아시아 우방국들에게 신뢰를 줄까.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미국인 노년 세대는 그 결과를 볼 만큼 오래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의 결과는 자녀와 손자들에게 미칠 것이다. 1930년대로 복귀하기로 투표한다면, 후세는 결코 그들을 ‘가장 위대한 세대’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세대(The Greatest Generation)

1901~1927년 출생 미국인 세대로, 2차 대전에 참전하고 전후 미국의 부흥을 이끈 세대를 일컫는 용어. G.I. 세대, 2차대전 세대라고도 불린다.

6ㆍ25 전쟁에서 미 육군 8군을 이끌었고 한국군 현대화에도 큰 공헌을 했던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이 처음 쓴 표현이다. NBC 방송의 스타 뉴스 앵커였던 톰 브로커가 1998년 자신의 저서 제목으로 썼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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