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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법없이도 사는법]등기 믿고 거래했다가 집 날려 ..논란의 ‘등기부 공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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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인터넷등기소 부동산 등기부등본 열람 화면. /인터넷 등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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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의 돈이 들어가는 부동산 거래에서 등기부 등본 확인은 필수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거래 현장에서는 깨끗한 등기부를 믿고 거래했다가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우리 법제가 부동산등기부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A씨는 2007년 한남동 소재 1514㎡ 대지의 37.5%에 해당하는 지분을 지인 세 명과 함께 약 8억 9000만원에 낙찰받았습니다. 시가로 60억원에 해당하는 땅을 9억원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낙찰받아 큰 돈을 벌 기회를 잡은 것이죠. 하지만 두 번의 대법원 판단을 거치면서 경매의 근거가 된 저당권 설정 자체가 무효로 판단되면서 땅의 소유권을 잃었습니다.

A씨는 대박의 꿈을 접고 자신들이 납부한 매각대금 중 4억 5000여만원을 배당받은 은행과 4억원을 배당받은 개인을 상대로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내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소유권취득이 무효가 됐으니 경매 배당도 무효라며 배당권자들에게 돈을 돌려받아 손해를 보전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자금력이 있는 은행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개인의 경우 이미 돈을 써버렸기 때문에 피해회복이 요원한 상태입니다.

등기부를 믿고 집을 샀다가 집을 날리게 된 사례도 있습니다. 2017년 화곡동의 한 빌라를 대출을 받아 2억원에 매입했던 B씨의 경우 등기부등본에 전 집주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린 후 설정한 근저당권이 말소된 것을 보고 서류상 깨끗한 집이라고 생각해 매수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전 집주인은 빚을 갚지 않은 채 서류를 위조해 근저당권을 말소한 것이었습니다. 은행은 불법 말소된 근저당권을 회복하라는 소송을 냈고 B씨는 패소했습니다. 이후에도 전 집주인이 빚을 갚지 않으면서 집은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B씨는 전 집주인에게 매수대금을 돌려받는 것밖에 구제방법이 없지만 실형선고를 받고 복역한 전 집주인은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 ‘니코틴 살인사건’도 등기부 피해자 낳아

2016년 내연남과 짜고 남편을 니코틴 원액으로 살해한 이른바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도 등기부 공신력의 희생자를 낳은 사건입니다. 남편 살해 후 아내가 상속받아 처분한 부동산을 매수한 사람이 남편의 조카로부터 부동산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당해 패소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기 직전 위조된 혼인신고서로 혼인신고를 한 다음 남편 사망후 부동산을 상속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혼인신고서가 위조됐기 때문에 혼인이 무효이고, 혼인에 기반한 상속등기도 무효인 것이지요.

우리 법제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등기부만 보고 매수한 매수인도 ‘선의의 제3자’로써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부동산을 ‘진정 상속인’인 조카에게 돌려내야 하고, 매도인인 아내로부터 돈을 돌려받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처분절차가 복잡한 종중 소유 부동산에서는 특히 이런 문제가 자주 발생합니다. 작년 11월엔 종중의 땅이었던 부지에 조성된 48세대 규모 주택단지를 분양받은 사람들에게 종중이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하라’는 소송을 내 수분양자들이 패소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2013년 종중 땅이 건설회사에 넘어갔는데, 그 매매계약이 이미 해임된 종중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적법하지 않아 이후 이뤄진 이전등기도 모두 무효라는 것입니다.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아니더라도 실체관계와 맞지 않는 등기가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전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지었는데도 이전 건물 등기부를 폐쇄하지 않고 재활용할 경우 그 등기는 무효입니다.

실제로 작년 9월 9차례 유찰 끝에 2억 3000여만원에 매각된 서울 중구 신당동의 29평 대지의 경우 땅 주인이 1996년에 기존 건물을 부수고 새로 건물을 지으면서도 등기를 하지 않았는데 기존 건물에 대한 등기부가 그대로 살아 있으면서 이후에도 네 건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내용이 확인됩니다. 만일 이들 근저당에 기해 건물 경매가 이뤄진다면 경매 무효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등기부 믿고 거래한 사람들, 보호할 방법은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등기를 믿고 거래한 사람보다는 서류위조 등에 땅을 뺏기게 되는 진정한 권리자를 보호하려는 입법적 결단이기는 합니다. 현행 제도상 등기를 수리하는 등기관에게는 필요서류가 제대로 구비됐는지만 확인하는 ‘형식적 심사권’만 있고 실제 매매계약이 유효하게 이뤄졌는지, 등기 관련 서류가 위조된 것은 아닌지 심사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등기에 공신력을 부여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등기를 믿고 거래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다 보니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등기를 수리할 때 매매계약서나 등기의 원인된 서류들을 모두 등기소에 제출하게 하는 방안을 제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A->B->C->D로 거래된 부동산을 E가 매수하려 할 때 직전 C-D간 거래 뿐 아니라 A-B 거래가 문제가 없는지도 점검해 등기의 공신력을 보완하는 차원입니다. 부동산 전문인 최광석 법률사무소 로티스 변호사는 “미국의 경우 변호사가 서류를 모두 점검해 해당 거래 뿐 아니라 이전 거래에 문제가 없었는지도 점검한다”며 “현재는 종이 서류를 일정 기간만 보관하다 폐기하는데 모든 자료를 디지털화해 영구보관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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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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