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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 비금도에 초대형 작품 설치하는 英 조각 거장… “섬 사람들 삶에서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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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38개로 휴식하는 인간 표현… 세계적 조각가 앤터니 곰리 인터뷰

조선일보

전남 신안 비금도 원평해변에 대규모 작품 '엘리멘털'을 설치하는 조각 거장 앤터니 곰리는 "바다의 움직임, 작품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의 이동이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John O’Rou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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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세계적인 조각가 앤터니 곰리(Gormley·74)가 전남 신안군 비금도 원평해변에 초대형 작품을 설치한다. 제목은 ‘엘리멘털(Elemental)’. 신안군이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초청해 대자연의 바다, 땅, 태양을 주제로 신안의 풍경을 작품으로 녹여내는 ‘예술 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지난 2022년 7월 비금도를 방문한 곰리는 대동염전과 내촌마을 옛 담장, 갯벌 등을 걷고 보고 느끼며 새소리, 파도 소리까지 녹음해 런던으로 돌아갔고, 해안가에 설치할 작품에 대한 구상을 최근 끝냈다.

곰리는 본지 단독 인터뷰에서 “휴식을 취하는 인간의 몸을 연상케 하는 38개의 큐브 구조물을 설치할 것”이라며 “밀물 때는 바다가 작품을 점령하고, 해변이 드러나면 거대한 구조물 사이를 자유롭게 걸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간의 몸에 대한 탐구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조각 거장을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비금도에 설치될 작품이 궁금하다.

“2년 전 방문했을 때 경치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바다가 다양한 종류의 생명을 생산하는 방식, 소금을 만들고 건조된 해조류를 수출까지 한다는 것, 인간의 삶이 바다의 관대함과 연결돼 있다는 데 매우 감동받았다. 자연과 함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영감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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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터니 곰리가 지난 2022년 전남 신안 비금도를 방문해 작품을 설치할 장소를 살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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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걷고 가시나무 숲과 산을 오르내리며 신안의 섬과 바다를 반복해 체험했다고 들었다. 이런 경험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설치될 작품이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원한다. 파도 치는 소리, 나무와 바위 위에 부는 바람 소리까지도. 여기서 작품은 별개의 무언가가 아니라 장소 그 자체이고, 방문객은 이곳의 일부가 된다. 이 조각이 인간의 존재, 의식, 감정, 시간과 공간에 대한 경험을 집중시킬 수 있는 작은 건축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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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비금도에 설치될 '엘리멘털' 콘셉트 드로잉. /앤터니 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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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변뿐 아니라 그 뒤 작은 산과 숲을 포함한 전체 공간을 아우른다. 숲을 거쳐 20분 동안 걸어 해변에 접근하는 것이 내게 중요했다. 그다음 모래언덕을 가로지르는 길을 통해 해변에 다다르면 갑자기 60m쯤 앞에 있는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밀물이라면 바다가 작품을 뒤덮을 것이고, 작품 내부를 걷고 싶은 방문객은 바다가 물러가길 기다려야 할 거다. 해변을 떠나 그 뒤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서면 비로소 인간의 몸 형태를 하고 있는 구조물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것은 이렇게 주변 공간을 한 눈에 담은 뒤에야 가능해진다. 먼 수평선, 북쪽·서쪽의 다른 섬들까지 큰 풍경의 일부로 들어오면서, 38개의 큐브 구조물들이 휴식을 취하는 몸의 형태로 보일 것이다.”

곰리는 인간의 몸, 더 나아가 인체와 우주의 관계를 탐구하는 조각과 설치 작업, 공공 미술로 명성을 얻었다. 1960년대부터 ‘자연과 우주에서 인간은 어디 서 있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몸을 직접 석고로 떠서 주물(鑄物)을 만들었다. 웅크리거나 선 자신의 벌거벗은 몸에 석고를 바르고 굳혀 틀을 만든 뒤 철이나 납과 같은 재료를 부어 작품을 완성한다. 극도의 인내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는 “나 자신의 존재를 사용해 존재 자체를 탐구하고 싶었고, 내 몸을 주형으로 만들어 보다 직접적인 생명력을 창출했다”며 “아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아내는 내가 서 있고, 쪼그리고, 누워있는 자세로 형상화한 틀을 만들어 인간의 살아있는 순간(시간)을 기록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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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곰리가 1998년 영국 북동부의 탄광촌 게이츠헤드 언덕에 세운 초대형 조각상 ‘북방의 천사’는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회자된다. 인구 20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도시가 연간 관광객 670만명(2022년 기준)을 불러 모은다. 거대한 비행기의 날개를 단 육중한 몸집의 천사가 도시의 관문을 지키는 진짜 천사가 됐다.

영국 웨스트 위터링 비치에 설치됐던 작품 ‘땅, 바다와 공기’(1982)는 세 개의 인물 조각으로 이뤄졌다. 작가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각인 시각, 후각, 청각에 대해 생각했다”며 “수평선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인물은 시각을 바다와 연결했고, 두 개의 콧구멍이 뚫린 인물이 하늘을 향해 무릎 꿇은 조각은 후각을 공기와 연결한 것, 얼굴을 땅에 가까이 대고 웅크린 몸체는 청각을 땅과 연결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0년에는 서울·런던·부에노스아이레스·베를린·뉴욕 등 5개 도시에서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프로젝트 ‘커넥트(Connect), BTS’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알루미늄 선을 엮어 작은 숲을 연상시키는 높이 12.5m의 구조물 ‘뉴욕 클리어링’이다. 그는 “아이들이 작품 위를 뛰어다니고 숨어들고, 다이빙하는 모습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비금도에 설치될 엘리멘털도 마찬가지다. 바다의 움직임과 사람들의 이동이 없다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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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앤터니 곰리가 전남 신안 비금도를 방문해 작품을 설치할 곳을 살펴보고 기록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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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신안에서 완성된 작품을 볼 수 있을까.

“2025년 말, 늦으면 2026년 여름이 될 것 같다.”

곰리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직관이나 창의성을 결코 대체하지 못할 것”이라며 “인류가 추구해온 사이버 시대는 신체를 불필요하게 만들지만, 실감 나는 육체적 경험은 모든 존재의 기반이고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부할 수 없다. 기술에 물들지 않고 생물권 내에서 우리 자신을 뿌리내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엘리멘털은 바로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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