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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기자수첩] “배당 달라” 생떼만 부리면 행동주의 펀드는 백전백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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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 펀드 입장문에는 일일이 대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별거 아닌 일까지 키우려는 여론전에 괜히 발맞춰 줄 이유는 없더라고요.” 최근 행동주의 펀드와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펼쳤던 한 상장사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일반적으로 회사 측보다 지분이 적기에 여론전에 의존한다. 소액주주의 지지를 얻고,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서다. 사실 여론만 보면 행동주의 펀드는 유리한 고지에 있다. 주주들 대부분은 회사의 퍼포먼스에 불만이 있기 마련이니까.

증시 환경 자체도 행동주의가 활동하기에 좋다. 저성장 기조가 굳어지면서 실적이 둔화한 기업이 다수이고, 개인 주주도 많다. 증여·상속이 만만찮은 환경이다 보니 승계 과정에서 ‘꼼수’를 벌이는 대주주가 많았고, 이는 결국 행동주의 태동의 명분으로 이어졌다.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공격받은 국내 기업은 최근 5년 사이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런데 행동주의 펀드가 등장하면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까. 예전에는 분명 그랬지만, 올해는 모르겠다. 올해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제안을 한 이후 주가가 상승한 곳은 26일 기준 삼양패키징, KT&G뿐이다. 이마저도 상승률은 1.0% 수준에 그쳤다. 시티오브런던 등 5개 사가 주주 제안한 삼성물산, 차파트너스가 주주 제안한 금호석유화학, KCGI자산운용의 현대엘리베이터, 얼라인파트너스의 JB금융 등은 모두 주가가 오히려 내려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등장과 동시에 소액주주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던 행동주의 펀드의 존재감이 왜 이렇게 떨어졌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투자자들 사이에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되더라도 기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고, 여론전을 통해 주가가 오르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이 학습돼서다.

주가가 오르면 펀드만 수익을 내고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한진칼 경영권 분쟁 당시 KCGI는 오너가를 비판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그러나 KCGI는 주가가 오르자 한진칼 지분을 호반건설에 매각하면서 두 배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DB하이텍도 마찬가지였다. DB하이텍이 딱히 달라진 것은 없었는데 KCGI는 뜬금없이 경영혁신 계획을 환영한다면서 주식을 DB에 되팔고 퇴각했다.

지금까지도 내홍이 끝나지 않은 SM엔터테인먼트는 얼라인파트너스가 이사회 진입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딱히 개선된 면이 보이지 않는다. 주가는 15만원에서 계속 뒷걸음질 치다가 현재는 반토막이 났다.

행동주의 펀드의 행동 전략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나라 기업은 제조업 기반 비즈니스가 많다 보니 끝없이 재투자해야 하고, 신규 먹거리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만 이야기하니 기업 입장에서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오죽하면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나 국민연금이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들어주는 일이 거의 없을까. 행동주의 펀드도 왜 본인의 제안이 먹혀들지 않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모바일 게임에 관심 없던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가 히트작 ‘포켓몬고’를 출시한 배경엔 홍콩계 행동주의펀드 오아시스매니지먼트의 공개서한이 있었던 것을 다시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회사에 어떤 제안을 하면 더 진지하게 들을지, 행동주의 펀드도 공부해야 한다.

정민하 기자(mi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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