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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송승섭의 금융라이트]오르면 무조건 좋을까?…최저임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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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시간당 9860원

최저임금 효과 둘러싼 논쟁들

"실업자 증가" vs "시장실패 보완"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986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올해 9620원에서 240원(2.5%) 올랐죠. 주휴수당까지 고려한 월급은 209시간 일했을 때 206만740원입니다.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설지가 초유의 관심사였는데, 최저임금위원회는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인상 속도를 조절했습니다. 매해 갈등과 논란을 빚는 최저임금제도는 경제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까요?

최저임금제도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임금결정과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시장규제의 하나입니다.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고 반드시 그 이상을 지급하도록 강제합니다. 최소한의 임금을 보장해 노동자의 생활안정, 노동력의 질적향상, 임금격차 완화, 공정경쟁 촉진 등을 이룩하는 게 목적입니다. 최초의 최저임금제도는 1894년 뉴질랜드에서 시작됐고, 한국은 1988년 1월 도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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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서울 국회의사당역에서 열린 최저임금 동결 촉구 결의대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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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제도는 실제로 노동자에게 득이 됐을까요? ‘신고전학파’라고 불리는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제도가 거꾸로 노동자에게 피해를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임금은 기업(수요)과 노동자(공급)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이러한 임금을 ‘균형가격(균형임금)’이라고 합니다. 최저임금은 당연히 균형가격보다 높게 설정됩니다. 인위적으로 임금이 책정되면 그만큼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수요가 줄어듭니다. 고용이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는 뜻입니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혜택을 보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오히려 직장을 잃고 처우가 더 열악해지는 셈이죠.

하지만 ‘포스트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경제학자들은 정반대 의견을 내놨습니다. 기업과 노동자가 자유롭게 임금을 결정하는 시장은 환상이라고 반박했죠. 오히려 대부분의 노동시장은 ‘독점기업(과점기업)’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독점기업이 최대한 낮은 임금을 강요하게 된다고 봤습니다. 광산을 독점한 기업이 낮은 임금을 제시해도, 광산에서 일하고 싶다면 제안을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최소한의 임금을 정해야만, 노동자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수 있고 시장실패를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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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퇴진 전국노동자대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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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물가에 끼치는 영향도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신고전학파는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의 생산비를 증가시킨다고 얘기합니다. 기업은 당연히 생산품 가격을 올리고 이는 소비자물가의 상승으로 이어지죠. 특히 물가상승기에 최저임금을 계속해서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과도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우려했습니다.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의 경우 물가상승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통해 노동자의 소비 촉진으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적당한 수준에서 임금과 물가가 오르면 사람들의 구매력이 증가하고 기업의 생산량 증대로 이어진다는 거죠.

정치인이 최저임금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경제정책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1979년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는 총리로 집권한 후 최저임금제를 폐지합니다. ‘최저임금제도가 영국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실업률을 증대시킨다’는 게 근거였죠. 1909년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후 7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강력한 노동유연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누구도 풀지 못했던 영국의 복지병을 해결했다는 평가가 이뤄졌습니다. 다만 반대급부로 영국의 빈곤율이 최저임금 폐지 이후 주변국의 두배로 치솟았다는 지적이 있죠.

한국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집권 초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가치를 내걸고 강력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시도했습니다. 대선공약으로는 임기 내 1만원 달성을 내걸었고, 2018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은 긍정적 효과가 90%”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첫해 역대 최고 인상률인 16.4%를 기록했고, 2년 차에 10.9%의 최저임금 인상률을 기록했습니다. 이같은 정책으로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19년 8350원까지 빠르게 올랐습니다. 그러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가중된다는 여론의 역풍을 강하게 맞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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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8차 전원회의.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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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도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이 정반대로 갈렸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저임금을 올린 결정에 대해서 “소규모 영세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의 추가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경영 애로가 가중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소상공인의 나 홀로 경영을 심화시켜 결국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폭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성명을 내고 “공정성과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최임위는 존재 가치를 상실했고 그 결과 역대 최저 수준의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에 분노하고 규탄한다”는 논평을 냈죠.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내년 최저임금이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결정돼 실질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고 우려했습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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