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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2 (일)

돈 없으면 귀화 NO… "3천만원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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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만원 재정증명 요구… 경제력 없어 막막

국적 취득 까다로운 요건에 이방인으로 전락

수틴(44·가명·태국인)씨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10년 넘게 한국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외국인’이다. 속인주의에 따라 태어나면서부터 자동으로 한국인이 된 두 아들은 “왜 엄마만 한국인이 아니에요”라고 묻곤 한다. 수틴씨는 여러 차례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귀화 신청서를 냈지만 번번이 심사에서 탈락했다. 영주권 심사도 마찬가지였다. 돈 3000만원이 없어서였다.

다문화가족 100만 시대. 하지만 국적 취득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해 ‘한국인’이 아닌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많다. 특히 가난한 남편을 만난 ‘죄’로 귀화하지 못한 여성들은 ‘대한민국은 돈 없는 남편과 결혼하면 국적도 안 주는가’라고 하소연한다.

3일 안전행정부 등에 따르면 국내에 들어와 사는 결혼 이민자와 혼인 귀화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26만7727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결혼이주여성은 47.4%로 절반도 되지 않는다.

세계일보

결혼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신청하려면 1∼2년의 거주기간과 혼인 지속 여부, 자녀 유무 등과 함께 3000만원 이상의 예금잔고나 전세계약서 등의 재정증명을 해야 한다.

수틴씨는 “남편이 지병 때문에 쉬는 날이 많아 저축했던 돈을 병원비로 쓰다보니 전세금도 없어 월세로 살고 있다”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매번 ‘신청서는 받아주지만 재정 요건을 갖추지 못해 안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속상해했다. 수틴씨 부부는 둘 다 직업을 갖고 있다. 수틴씨의 이런 사연은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그의 일터를 방문했을 때도 전달됐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염 대표는 “센터에도 그런(재정문제로 인한) 상담이 많이 들어온다”며 “결혼이주여성 상당수가 경제력이 없는 남편과 결혼해 고생하는데, 남편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국적을 주지 않는 것은 가혹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이민통합과 관계자는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이 국가에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그러나 3000만원의 재정증명을 못하더라도 이주여성이 일하고 있다는 재직증명서만 있어도, 근로 의지만 있어도 국적을 주고, 특히 자녀가 있는 경우 재정요건을 절반으로 낮춰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런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결혼이주여성이 법무부가 지정한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자녀까지 있는 경우 귀화신청서를 내면 국적을 얻기까지 1∼2년이 걸린다. 그러나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더라도 자녀가 없으면 2∼3년, 가정폭력 등 남편의 귀책사유로 이혼하고 자녀까지 없는 경우 3년 이상 소요되거나 아예 국적을 취득하지 못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국염 대표는 “법과 원칙보다 각 지역 출입국관리사무소장과 담당 직원의 재량에 따라 이주여성 국적 취득이 결정되는 게 문제”라며 “직업이 있어 자립 능력을 갖춘 여성들에게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체류조건까지 차별하는 것은 인권침해이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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