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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베를린 소녀상' 철거 위기

“타협한다지만”… 갈길 먼 獨 베를린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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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전경./코리아협의회 제공

[쿠키뉴스] 정유진 인턴 기자 =독일 베를린 미테구(區)에서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보류했다. 시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테구(區)는 13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소녀상이 당분간 철거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녀상을 설치한 현지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소녀상 철거 명령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기 때문이다. 미테구는 소녀상에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슈테판 폰 다쎌 미테구 구청장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쟁의 당사자와 우리의 입장을 검토할 것”이라며 “코리아 협의회와 일본 측 모두의 이익을 공정하게 다룰 수 있는 타협안을 마련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서 미테구청은 지난달 25일 거리에 1년간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허가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에서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자 미테구청은 지난 7일 코리아협의회에 자진 철거 명령을 내렸다. 철거 명령 이유는 코리아협의회 측이 사전에 알리지 않은 비문을 넣어 독일과 일본 간 긴장 관계를 조성했다는 점이었다. 해당 비문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여성을 성노예로 동원했다는 내용이다.

코리아협의회 측은 최초 허가 절차에 문제가 없었던 만큼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설치 당시 비문 내용 제출 요청이 없었고, 비문 내용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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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이 13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당분간 중단한다고 밝혔다/독일 베를린 미테구청 홈페이지 캡쳐

시민들은 철거 시점을 앞둔 상황에서 미테구의 입장 변화에 안도감을 드러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A씨(55·여)는 “당장 철거하지 않고 시간을 벌어 다행이다”라며 “보류하는 사이 우리나라 정부가 나서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생 B씨(24)는 “독일은 일본과 같은 전범국”이라며 “과거사에 반성하고 있다면 철거 보류 결정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독일 내에서도 미테구의 철거 명령이 부당했다는 비판이 인다. 독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는 독일인 C씨(22·여)는 “소녀상은 모든 전쟁에서 발생하는 성범죄에 대한 상징”이라며 “소녀상의 보편적 의미를 무시한 채 일본과의 관계를 의식해 철거 명령을 내린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정부의 압박이 외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독일 교민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평화상이 철거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라면서도 “어쩌면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지금까지 독일의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미테구의 결정이 ‘재검토’일 뿐, 철거명령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다. 직장인 D씨(25·여)는 “보류라는 게 다시 철거를 진행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결정인 것 같다”며 “철거 결정은 여성 인권에 대한 외면이었고 이번 보류 결정도 그 연장선으로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독일 교민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은 미테구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교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치적 수사라고 비판했다. 이 네티즌은 “사단법인이 법적 절차를 거쳐 설치한 소녀상에 ‘철거 비용’을 운운하며 (철거를 요구한 것은) 미테구청”이라며 “베를린 시장도 아니고 작은 구의 구청장이 (철거 명령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에) 방문했다고 좋아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독일 교민 사이트의 한 네티즌은 “비문이 문제라면 비문만 문제 삼아야지 동상까지 철거하라는 건 이해 안 된다”며 “보편적인 인권 문제에 대한 평화적인 표현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현지에서는 비문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문에 전쟁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추가하는 방안이 예상된다.

ujiniej@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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