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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이슈 텔레그램 n번방 사건

SNS에 떠도는 'n번방 리스트'… “임의 공개는 명예훼손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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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확인 안된 자료… 피해자 추정 정보도 함께 공개돼 / 변호사 "확인되지 않은 사실 유포 시 처벌받을 수도"

세계일보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과응보라고 생각해요. 더 공공연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네요”

최근 온라인상에 유포된 ‘n번방 리스트’에 대해 대학원생 손모(27)씨는 이같이 말했다. 텔레그램 성착취물 제작·유포 가담자 대한 신상공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이들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상에 급속히 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권 밖의 신상공개는 명예훼손 등 또 다른 법적 문제를 낳을 수 있는 만큼 자제를 촉구했다.

9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n번방 유료회원결제 리스트’란 이름의 파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한 포털 사이트 블로그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이 파일에는 n번방 결제 회원이라는 40여명의 이름과 나이, 연락처, 사진 등이 담겼다. 일부는 개인 신상뿐 아니라 가족관계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정보도 포함됐다. 해당 정보들은 텔레그램 ‘주홍글씨’ 방에서 나온 공개된 내용을 캡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주홍글씨는 텔레그램 성착취물에 대한 ‘자경단’을 자처하며 “텔레그램 강력범죄에 대한 신상공개 및 범죄자의 경찰 검거를 돕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특히 텔레그램 3대 강력범죄를 강력히 규탄하며, 범죄자들의 인권 또한 따지지 않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약 1만명이 가입된 이 방에는 ‘박사방’, n번방 등에서 성착취물을 구매한 남성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이들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는 등 벌을 준 뒤 이를 인증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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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대화방 '박사방'에서 성 착취물을 유포한 조주빈의 공범 A씨가 9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주홍글씨도 애초 불법촬영물이 공유되던 방이었으나 운영자들 간 알력 다툼 과정에서 서로의 신상정보를 ‘박제’하기 위해 파생됐다는 의혹도 있다. 가담자라는 사람의 신상정보가 수사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된 내용이 아니고, 피해자로 추정되는 이들의 개인정보가 함께 공개되는 문제도 있다. ‘텔레그램 자경단’에서 기존 피해 영상이 유포된 것과 관련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이같이 n번방 사건 관여자에 대한 신상정보가 주목을 받는 데는 박사방 운영자 조씨 외에 다른 공범에 대한 신상공개 요구가 거세기 때문으로 보인다. n번방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9일 기준 200만명이 넘은 상황이다.

경찰은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현 시점에서의 신상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혐의 입증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1차적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보호 측면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지난 6일 “신상공개는 범죄의 명백성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규명이 이뤄진 다음 단계에 가서 하나하나 판단해야 할 사항”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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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론에 편승한 신상공개가 개인정보 침해로 비화해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충분한 검증 없이 특정인을 범죄자로 지목하고 주변인 개인정보까지 퍼뜨려 불의의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법무법인 숭인의 김영미 변호사는 “주범 외의 가담자에 대한 신상이 공개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 취지는 공감한다”면서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제작·유포하는 행위는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온세상의 김재련 변호사는 “사실 관계를 차치하고라도 성폭력특례법 등 법에 명시된 조건과 절차에 따르지 않는 신상공개는 수사기관의 존재 의미를 무색하게 한다”며 “법적 안정성을 위해 임의로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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