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3월 30일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면서 어려운 분들의 생계를 지원하고, 일상을 희생하는 국민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내며, 소비 진작으로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이런 파격적 복지 확대의 사례는 서구 복지국가 역사상 전쟁이나 대공황 같은 국가적 위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복지국가의 시초로 불리는 영국에서 처칠 수상은 2차 세계대전을 총력전으로 치르면서 지친 국민들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모두가 잘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1929년 터진 미국의 대공황 시기에 집권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과 전면적인 사회보장법 도입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지금 이 시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전쟁 중인 전시(戰時)이자 대공황에 가까운 전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이기에, ‘긴급재난지원’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입장은 찾아보기 어렵다. 문제는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현재 긴급재난지원금은 구체적인 선정기준 등이 마련되지 못한 채 먼저 발표된 상태다. 이제 신속하고 공정하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정책 디테일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첫째, 생계가 어려워진 이들에 대한 긴급 지원의 목적과, 일상이 희생된 중산층을 위로하려는 목적, 거기에 상위계층은 제외하려는 목적을 담아 한번에 지급하려는 방식이 여러 가지 무리수를 낳고 있다. 이들 목적을 한 번의 긴급재난지원에 무리하게 서둘러 담으려 하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계층별 단계적 지급이 그것이다. 지원이 시급한 취약계층을 1단계 우선 지급대상으로 하고, 대신 대상자 선별에 필요한 선정기준을 단순화해 당장 신속한 지원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적 타격을 좀 더 견딜 수 있는 중산층에게는 시간을 두고 명확한 선정기준을 마련한 후에 2단계로 지급하면 된다. 향후 재난의 추이에 따라 국민의 70%라는 대상 기준에 대해 유연한 검토가 필요할 수도 있다. 재난이 오래 지속될 경우, 지원대상을 50% 정도로 줄이고 그 재원으로 1단계의 긴급계층에게 한 번 더 지급하는 것이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 접근이 정 어렵다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신청자에게 우선 지급하고, 소득기준이 넘어 지급받은 경우 사후에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를 통해 환수하는 것이 행정비용을 줄이고 신속하게 지급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둘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현금 급여를 지급하는 역할 분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애초에 지자체의 재난지원을 지원하겠다고 하고서, 뒤늦게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결정하면서 지방정부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음으로써, 상당수 지자체는 자체 계획했던 지원금 지급 여부를 두고 혼란에 빠졌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으면서 급여 중복의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코로나19의 경제적 파급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가 다 나서서 누구에게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조정 과정조차 없이, 아주 유사한 현금지급 방식으로 한 번의 지원에 막대한 재정을 쏟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역할에 대한 원칙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번 기회에 중앙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현금 급여를, 지방정부는 지역 상황을 고려하는 차별화된 접근을 하도록 역할 분담 원칙이 제대로 세워져야 한다. 이렇게 명확히 기준이 세워진다면, 중앙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은 지자체 분담이 아닌 국가 예산에서 지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지금은 가계도 기업도 힘들다. 정부의 대응이 단기적 시야에서 국민 개인에게 소득 지원과 위로 차원으로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기업에도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인 지원과 독려가 필요하다. 긴급재난지원금을 통해 소비진작이 이루어지면 식품 등의 필수품 산업에의 펌프질은 어느 정도 가능할 수 있지만, 코로나19의 직격 산업들은 매출 없이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강제 무급휴가를 실행하거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태에 놓여 있다. 섣부른 시장 개입은 자칫 왜곡을 낳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긴급재난 상황에서 고용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기업에는 휴업수당(고용유지지원금)뿐만 아니라 유급휴가비 등의 지원책을 강화해야 한다. 기업과 일자리를 통한 고용복지 인프라가 무너지면 한 개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방역 선진국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우리나라가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성공적으로 이겨내고 있다고 해도, 전 세계적인 전시상황이 종료되지 않는 한 경제회복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금 겪는 경제적 곤란이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종료되어 바로 회복될 수 있느냐 아니면 장기적 경제침체의 늪에 빠지는냐의 기로에 서 있는 현실 앞에서, 어떤 이유로든 지금은 방만하게 비효율적인 정책 실험을 할 때가 아니다. 혹여 미래의 대응 여력을 끌어다 쓰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가중시킨 사례가 되지 않도록 현명한 정책 디테일이 요구된다.
[김수완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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