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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기찬의 인프라]국제노동기구(ILO)의 코로나 분노 "사회보호시스템 실패"…세계 각국 강도높은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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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6일 오전 대구 북구 경대교 인근 도로에서 한 노인이 수레 가득 파지를 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지역 경제는 물론 저소득 취약계층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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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기 침체 속도를 늦추고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확장 재정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정부는 30일 소득 70% 이하 가구에 10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유럽은 일회성 지급에 그치지 않고 매주 또는 매달 일정액을 주며 취약계층 보호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실업급여 자격이 없는 사람(자영업자, 프리랜서와 같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도움에 역점을 둔다.

유로뉴스(EURO NEWS)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6주 동안 매주 230유로(31만원)를, 영국은 주당 94파운드(14만원), 벨기에는 한 달에 1582유로(215만원), 이탈리아는 월 600유로(82만원), 프랑스는 소득이 70%가량 줄어든 사람에게 1500유로(204만원)를 지급한다. 이와 별도로 유럽연합(EU)은 코로나 채권 논의에 들어갔다.



"코로나, 사회보호 시스템 실패 일깨워…30년대 대공황 재판 막아야"



국제노동기구(ILO)는 이런 움직임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단기처방에 불과하다는 게 ILO의 생각이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로 허술한 사회시스템이 드러났다"며 분개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사회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라"고 강하게 주문하면서다.

가이 라이더(Guy Ryder) ILO 사무총장은 27일(현지 시각) "2020년이 1930년대(대공황)의 재판이 되지 않도록 지금 행동해야 한다"며 "노동자, 일자리, 소득을 지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강구해달라"고 각국에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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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부 룸바르디아 주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 마련된 임시진료소에서 16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병상에 누운 채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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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2500만개 일자리 상실, 4164조 소득 손실



사라 라자비(Sahra Razavi) ILO 사회보호담당관은 한발 더 나아가 회원국에 장문의 권고문을 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사회 시스템을 개혁하라는 요지다. ILO는 이에 앞서 코로나19로 2500만개의 일자리가 소멸하고, 3조4000억 달러(4164조6600억원)의 소득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라자비 담당관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취약계층의 삶과 생계를 보호하는 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취약계층을 중심으로)경제적 안보 상실 사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기업이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다"고 봤다. 따라서 무작정 실업을 막을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호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라자비 담당관의 해법이다. 그는 "세계 인구의 55%(40억명)가 사회적 보호 혜택을 못 받고 있다"며 "사회와 세계 공동체의 안녕을 위협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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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봉쇄령이 내려진 인도에서 일용 노동자들이 28일(현지시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델리 아난드 비하르 터미널로 몰려들고 있다. 수만 명이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키운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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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사회보장 합의, 전 세계가 외면"



라자비 담당관은 각국의 사회개혁 의지를 질타하기도 했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제사회는 만장일치로 ILO가 권고한 사회적 보호 권장 사항을 채택, 최소한의 보호 수준을 확립하기로 약속했다. 2015년에는 2030년 지속가능 개발 의제에도 동의했다"고 상기했다. 당시 ILO 회원국은 기업 활력을 높이기 위한 유연한 노동시장 구축과 같은 노동개혁과 함께 빈민을 비롯한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사회보장 체계 강화에 합의했다. 그는 "코로나19 위기가 분명해지자 (이런 합의가) 거의 이행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개탄했다.

라자비 담당관은 법인세 개혁을 주문했다. 그 방향을 "다국적 기업이 공평한 금고에 기여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다국적 기업의 본사가 있는 선진국만 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기업이 중심이 된 사회 보장의 글로벌 연대를 강구하라는 얘기다.

그는 "다만 이 조치는 대유행이 경제할동을 이미 방해하고 있어서 효력이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봤다. 그래서 "즉각 사회보장 시스템에 대한 투자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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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코로나19’ 환자가 22일(현지시간) 3만 명을 돌파하는 등 급속도로 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감염자가 가장 많이 나온 뉴욕주 전체를 ‘중대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22일 미국의 대형마트 중 하나인 ‘Stop&Shop’ 내부 진열대(뉴욕시 Bay Terrace 소재)가 텅 비어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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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지원은 첫 단계 불과. 사회시스템 개혁으로 가야"



그는 "많은 정부가 가정과 기업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며 "이런 조치는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각국 정부는 현재의 위기에 의해 창출된 추진력을 이용해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사회보호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ILO의 진단대로 지금이 노동·사회보장 개혁을 추진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보다 취약계층이 충격을 흡수하고, 기득권은 이득을 보는 예전의 경제위기 때 연출된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개혁을 통해 경제의 피가 골고루 순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립하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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