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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고교생 유권자 14만명… 팻말 든 예비후보가 학교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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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만18세에 투표권, 달라진 풍경

조선일보

투표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고 홍보하는 현수막 앞을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4·15 총선의 만 18세 유권자는 50만명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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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졸업식이 열린 전남 목포의 한 여고 교문. 중년 남성이 ‘여러분의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식장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인사를 청했다. 4·15 총선에서 목포 선거구 예비 후보로 출마한 이 남성은 이날 졸업식이 열린 다른 고등학교 두 곳을 더 방문했다. 그 전날도 대구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다른 예비 후보가 학생들에게 “만 18세가 되는 고등학생들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꼭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 달라”며 “인물 검색을 통해 충분히 정보를 수집한 후 자신이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졸업식이나 운동회 등 선거구 학교 행사를 찾는 건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 예전에 그들의 목표가 학부모 표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교복 입은 유권자다. 지난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춰졌다. 올 4·15 총선에선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국민은 투표를 할 수 있다.

촛불 시위로 정치 경험한 만 18세가 투표장에 온다

선거 연령이 낮아지면서 올 총선에서 유권자가 약 53만명 늘어나고, 이 중 고교생은 약 14만명에 달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정치에 무관심할 것 같지만,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에 속하는 새로운 유권자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세대는 촛불 시위에 참여했으며 자신들과 또래인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세계 정상들을 꾸짖는 모습을 봤다.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만난 예비 고3 정종윤(18)양은 "한 반에서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는 데다가 '투표를 하는 첫 고등학생'이라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며 "우리가 투표를 많이 하면 10~20대를 위한 정책에도 신경을 쓸 것 같다"고 했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이들을 놓칠 리 없다. 1월 말에서 2월 초까지 예비 후보들은 졸업을 축하하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목에 건 채 선거구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명함을 돌렸다. 졸업생들과 찍은 기념사진을 SNS에 올려놓기도 했다. 한 정당의 인터넷 카페에서는 "18세 고3 자녀를 두신 부모님 되시는 당원 동지분들은 미리미리 확실한 한 표를 챙겨주시기를 부탁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최연소 후원회장도 나타났다. 대전 유성구을 예비 후보로 나선 김종남 전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의 후원회장은 만 18세 고3 학생이었다. 김 예비 후보 측은 "올해부터 늘어난 10대 유권자들이 정치에 눈을 돌리게 하고, 이들에게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선거 사범 될 수도… 관련 법은 언제 개정?

만약 투표권을 가진 고3 학생이 쉬는 시간에 자기 반 친구들에게 후보 A를 지지해야 한다고 연설한 뒤 점심 시간에 옆 반에 가서 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이는 선거법 위반일까? 그럴 수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에 따르면 선거운동을 목적으로 2개 이상 교실을 방문하면 안 된다. 현행법에서 호(戶)별 방문하는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선관위에선 학교의 '학급'을 '호'의 개념으로 보고 있다.

선관위 측은 "투표 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지면서 학생 중 선거 관련 범법자가 나올 수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문제는 선거 연령만 낮췄지, 이와 관련된 다른 선거법은 개정된 게 없다는 것이다. 우선, 후보자가 학교 운동장에서 선거 유세를 하는 게 불법인지 아닌지도 모호하다. 현행법에서 학교는 '다수인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로 '연설 금지 예외 장소'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건물의) 관리자·소유자의 의사에 반하면 안 된다'는 법을 적용한다면 교육청이나 교장의 반대로 학교 운동장에서 유세를 할 수 없게 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선관위에 "학교 내에서 후보자들의 선거 활동을 금지해달라"는 입장을 내놨다.

지난달 10일 선관위는 국회에 공직선거법 개정을 촉구했지만, 선거가 두 달도 남지 않은 현재로선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은 2016년 선거 연령을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추는 동시에 관련 법 300개 이상을 손봤다.

[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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