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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유레카] 1879년 일본 콜레라검역과 크루즈선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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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9세기 콜레라 대유행은 서구뿐 아니라 아시아도 초토화시켰다. 우리나라에선 1858년 유행 때 수만~수십만명이 희생됐다고 전해져온다. 섬나라였던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858년 서쪽의 규슈 나가사키에서 시작된 2차 대유행 땐 에도(현재의 도쿄)에서만 1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도 있다.(일본 후생노동성 검역소 누리집)

특히 200여년의 쇄국정책을 풀고 1854년 일·미 화친조약을 기점으로 차례차례 개항하던 일본에선 감염병에 대한 불안이 매우 컸다. 1868년 메이지 일왕 시대에 들어선 2~3년 간격으로 감염병이 번졌다. 외국과의 교역 창구로는 ‘항구’가 유일했던 이 시기, ‘미즈기와’(水際), 즉 물가에서부터 병을 차단하는 게 급선무가 됐다.

1879년 7월14일 공포한 ‘해항호열랄병전염예방규칙’은 일본 최초의 통일된 검역규칙으로 불린다. ‘호열랄’(虎列剌, 후례라)은 중국에서 콜레라를 가리키던 말인데 한국에선 호열자(虎列刺)로, 일본에선 호열랄 그대로 쓰였다. 당시 치사율은 60~70%에 달했다고 한다. 일본에선 증상이 급격히 심해지는 콜레라를 ‘천리를 간다’는 호랑이에 비유한 그림 등 ‘콜레라에(그림)’도 유행했다. 최초의 검역규칙이 공포되면서 나가사키 등 각지의 개항장엔 검역소가 설치되고, 기항하는 선박에 대해선 승객의 검진과 정선 조치 등이 실시됐다. 지난 보름새 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540명을 넘어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사태를 두고 일본 ‘미즈기와 방역의 참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미 140여년 전 도입된 방역의 원칙인 셈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일본의 크루즈선 방침을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교과서에 실릴 표본”이라고 꼬집었다. 아베 정권이 중국과의 관계나 도쿄올림픽 악영향 등을 우려했다는 분석이 많지만, 정해진 매뉴얼대로 하는 일본 관료들의 ‘전례답습주의’ 그리고 ‘영광의 시대’라 생각하는 메이지 시대에 정해진 규칙을 좀체 바꾸려 하지 않는 일본 사회 분위기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부터 요코하마항에서 승객 하선은 시작됐다. 쇄국의 기운이 남아 있던 14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세계가 연결·개방되고 인권에 대한 감각이 달라진 2020년, 일본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난 듯하다.

김영희 논설위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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