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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한삼희의 환경칼럼] 우한 코로나, ‘공포 반응’과 ‘분노 반응’ 관리가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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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리스크 작아도 체감 리스크는 수습 불능 치달을 수 있어

방역 당국 실책과 상황 은폐 있으면 분노 반응이 폭발

조선일보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연이은 세 명(29·30·31번)의 경로 불명(不明) 확진자가 나와 국내 우한 코로나 사태가 또 한 번 기로를 맞았다. 방역 당국, 의료 기관, 국민 모두의 철통 대처가 필요하다. 아울러 침착한 대응도 필요하다. 자칫 심리 공황(恐慌) 상태에 휩싸이면 수습하기 힘든 혼란으로 간다. 관건은 ‘공포 반응’과 ‘분노 반응’의 관리에 있다.

2009년 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관련 책에서 두 개의 공식(公式)을 제시해봤다. '실제 리스크=유해성 강도×위험발현 확률' '체감 리스크=유해성 강도×증폭 계수'라는 것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한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리스크는 그 자체론 대수롭지 않다. 12일 퇴원한 3번 확진자는 "센 독감 정도다. 2년 전 겪은 일반 폐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고통이었다"라고 했다. 다른 환자들도 속속 완쾌되고 있다. 18일까지 감염자는 국민 5000만명 중 31명(0.00006%)이다. 현재로선 실제 리스크는 '센 독감×0.00006%' 수준이다.

체감 리스크는 실제 리스크와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노르웨이 심리학자가 2009년 8월 도요타 렉서스를 몰고 미국 샌디에이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일가족 네 명이 숨진 사고를 분석했다. 가속 페달이 바닥 매트에 끼여 차가 통제 불능이 됐다. 도요타 차종에서 7년간 21명이 유사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 확인됐다. 도요타는 무려 900만대를 리콜했고, 사장이 미 의회 청문회에 섰다.

900만대에서 7년간 21명이 죽었다면 '연간 300만대 중 한 명'의 사망 확률이다. 심리학자는 비행기 사고사 확률이 연 35만분의 1, 계단 실족사 15만분의 1, 음식 먹다 질식사 10만분의 1, 미국의 교통사고 사망 확률 6500분의 1이라는 걸 상기시켰다. 도요타 사고 확률은 무시해도 괜찮을 수준이었는데도 패닉으로 빠져들었다. 2008년 한국 광우병 사태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미국 수입 쇠고기를 먹을 때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평가해봤는데 높게 잡아도 '1000년에 한 명' 확률이었다. 그런데도 끔찍한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 노르웨이 심리학자는 이에 "이미지와 느낌이 중요할 뿐 숫자와 확률은 의미 없다"고 했다. 사람들의 리스크 인식은 '확률맹(probability blind)'이라는 것이다.

체감 리스크를 키우는 또 하나 작용은 '증폭(增幅) 계수'이다. 증폭 계수엔 '공포 반응'과 '분노 반응'의 두 가지가 있다. 앞서 렉서스 사고 경우 운전자가 마지막 순간 911과 했던 통화("큰일났어요. 브레이크가 안 들어요. 멈춰, 멈춰, 제발, 잠깐만요, 아! 기도해주세요") 녹음이 TV에 생생하게 보도됐다. 도요타 차주들은 자기 차가 갑자기 미쳐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고 겁을 먹었고, 이것이 공포 반응을 촉발시켰다.

분노 반응으론 2015년 메르스의 예를 들 수 있다. 첫 환자가 병원 안팎을 누비고 다녔는데도 방역 당국은 격리 대상을 그의 입원 병실로 국한시켰고, 어느 대형 병원을 보호하느라 그곳 차단을 늦추다가 감염 확산을 방치했다. 방역 당국의 터무니없는 실책과 유착 은폐 의혹은 분노 반응을 일으킨다. '확률맹' '공포 반응' '분노 반응'의 세 가지가 각각 승수(乘數·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작용할 경우 체감 리스크는 실제 리스크의 수백, 수천 배가 될 수 있다.

우한 코로나는 렉서스, 광우병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바이러스는 자기 증식이 가능하다. 지금은 31명이지만 방역이 허술하면 수천 명, 수만 명으로 확산될 수 있다. '닫힌 확률'이 아니라 '열린 확률'이다. 또 우한 코로나는 내 의지만 갖고는 피하기 힘들다. 렉서스 사고는 자동차를 바꿔서, 광우병 공포는 미국 쇠고기를 안 먹어 대처할 수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어디서 어떻게 노출될지 알 수가 없다. 방사선이 무서운 것도 아무 느낌·고통이 없어도 방사선이 이미 몸을 뚫고 지나간 것일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눈에 안 보이고 원인·경로를 모르는 미지성(未知性)은 체감 리스크를 더 증폭시킨다.

공포 반응과 분노 반응을 관리하지 못하면 사회 이성(理性)이 마비된다. 방역 당국이 우한 코로나의 감염 경로, 증세, 대처법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면 공포 반응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멜라민 파동 때 보건 당국이 ‘멜라민이 가장 많이 검출됐던 과자를 몸무게 20㎏(6세) 아이 기준으로 하루 17개씩 평생 먹어야 건강 이상이 생긴다’고 쉽게 이해시켜 주부들의 동요(動搖)를 막았다. 정부가 핵심 정보를 숨기다 들통난다든지 말도 안 되는 실책을 범해 분노 반응이 폭발하면 리스크 관리는 불가능해진다.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고 절대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들어선 안 된다.

[한삼희 선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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