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샤론 최(왼쪽)와 봉준호 감독. 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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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격차 문제는 현실이자 일상이지만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봉준호 감독(51)은 영화 ‘기생충’을 통해 코미디, 서스펜스, 스릴러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 무거운 주제를 명료하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봉준호 장르’라고 불릴 만큼 주제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창의적이고 놀랍습니다.
봉 감독이 넘어선 것은 장르만이 아닙니다. 세계 영화의 심장인 할리우드의 견고한 아성을 무너뜨렸습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 감독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앞서 골든글로브에서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막 달린 외국 영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할리우드 영화 팬들에게 점잖게 일침을 날린 겁니다.
봉 감독과 함께 화제가 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봉 감독 옆에서 통역을 맡은 최성재(샤론 최)입니다. 전문 통역사가 아니라 대학에서 영화를 배우는 학생입니다. 그는 봉 감독의 유머와 농담까지 재치 있고 깔끔하게 옮기는 것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생중계 상황에서도 뛰어난 순발력으로 봉 감독의 의중을 정확히 꿰뚫어 전달하는 모습이 소름 끼칠 정도입니다.
최성재는 이미 ‘봉준호의 아바타’ ‘봉준호의 완벽한 빙의’ ‘언어의 마술사’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영화 매체 인디와이어는 최성재를 ‘오스카 시즌의 MVP’라며 극찬했습니다. 통역가에게 더 이상의 찬사가 있을까 싶습니다.
유튜브에는 최성재의 통역 모습을 담은 수많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습니다. 조회수가 100만을 넘는 영상도 많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습니다. ‘최고의 통역 10가지 이유’ ‘아카데미를 웃기고 감동시킨 최성재 통역’ ‘가장 어렵다는 한국어 유머 통역하기’ ‘미국 기자의 곤란한 질문에 능숙 대처’ ‘통역이 더 웃겼다’ ‘샤론 없었으면 통역 어쩔 뻔’ 등의 동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문 통역사들도 그의 언어적 감각과 뛰어난 순발력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감독 못지않게 통역사가 이처럼 팬덤을 형성하며 주목받고 있는 모습은 매우 이례적입니다. 봉 감독의 영화 철학이 제대로 전달된 것은 아카데미상 캠페인 기간 내내 그 옆에서 봉 감독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한 최성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최성재가 구사하는 어휘는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봉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얘기를 완벽하게 옮길 수 있는 것은 그의 타고난 언어적 감각과 더불어 영화에 대한 열정, 안목 덕분일 겁니다. 최성재는 어릴 때 잠시 미국에 체류한 적은 있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입니다. 그는 용인외고에 다니며 영어로 수업을 받고 영어 토론·발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2016년 작가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을 때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는 숨은 조력자로 평가받았습니다. 최성재는 이번에 오스카상의 숨은 공로자임이 분명합니다. 창작자에게 번역과 통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박인호 한국용인외대부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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