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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서양원칼럼] 리원량 죽음, 시진핑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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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로나19의 위험을 경고했다가 잡혀가 반성문을 쓰고 나온 중국 의사 리원량(34). 그는 죽었지만 중국인의 가슴속에 자유에 대한 절규로 부활했다. 그가 끌려가 강제로 쓴 답을 부정하는 '부넝(不能·못하겠다)' '부밍바이(不明白·모르겠다)'는 저항운동의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중국 당국이 초창기 위험 경고를 받아들이고 즉각 대응했더라면 지금처럼 7만3000여 명이 감염되고, 18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유행(pandemic)'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노한다.

중국 민심이 격해지자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19 발생 40여 일 만에 우한과 후베이성 서기를 경질하고 '단점과 부족함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정보 통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의료진에게 입을 못 열게 하고 있다. 위챗 등에 실린 비판 기사는 사라진다. 변호사 출신으로 우한의 감염 상황을 고발해온 천추스나 의류판매업자 팡빈도 연락두절이다. 코로나19 조기 대응 실패가 언론 자유 말살 때문이라고 비판했던 쉬장룬 칭화대 교수도 사라졌다.

중국인의 대규모 감염은 미국 유럽 등에서 아시아인을 경계 대상에 오르게 한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아시아인이라면 바이러스 숙주처럼 보는 시선이 많다. 이미 세계 여행업을 비롯해 주요 제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상에 이런 민폐가 있는가. 이게 미국과 맞짱을 뜨는 글로벌 2대 강국인가. 세계 GDP와 무역량 2위를 차지하고 인공지능, 드론, 안면인식, 빅데이터, 5G 장비 1위 국가라고 자랑하지만 국민 안전과 언론 자유 부문에서 최하위다.

중국이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고치지 않으면 체제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리원량의 죽음을 '아랍의 봄'을 촉발시켰던 튀니지 과일장수의 죽음과 비교했다. 또 구소련 체제를 붕괴시킨 계기가 됐던 '중국판 체르노빌'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중국은 2002년 사스 때도 초창기에 은폐하다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당시 사스 위험을 공개했던 장옌융 교수는 중국 내 보도가 안 되자 외신을 통해 사스 위험을 알렸다. 폐쇄적인 중국 체제가 사스, 코로나19 같은 대재앙을 반복해서 발생하게 하는 것이다.

시 주석은 당권, 행정권, 군권을 장악하며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 반열에 올랐다. 중국몽(中國夢)을 얘기하는 그 앞에서 누구도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코로나19는 중국 경제를 휘청이게 하면서 시 주석 리더십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전문 기관들은 중국 성장률이 바오우(保五·5% 성장)도 못 지킬 것으로 내다본다. 공기업 부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화약고다. 농촌에서 도시로 대거 몰려든 근로자들이 계속 일자리를 잃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 원칙을 무시하고 미국과 섣불리 붙었다가 철퇴를 맞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린이푸 베이징대 교수는 지난해 9월 세계지식포럼에서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와 맞짱 토론을 통해 중국이 패권싸움에서 승자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30년 후 누가 이길지 내기까지 했다. 지금 중국의 대응 태세라면 초반전 케이오 패를 당할 수 있다.

지금 중국은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지식인들까지 나서 국가 방역 체계의 구멍이 된 정보 통제를 풀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리원량 사망일(2월 6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세계는 시 주석이 어떤 입장을 들고나올지 주목한다. 중국에 '언론 자유의 봄'이 오길 기대한다.

[서양원 매일경제 편집상무 겸 세계지식포럼 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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