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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이상헌, 바깥길] “임금이 안 나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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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월 첫날에 문자가 왔다. 덩치는 곰만하면서 엉뚱하기도 한 매부다. 사는 일이 뜻 같지 않아서 오래전부터 조선소나 건설현장에서 일한다. 때로는 사람을 데리고, 때로는 혼자서 일하러 다닌다. 여동생을 생각하면 심란하고, 이제 곰발바닥이 되어버린 그의 손을 보면 짠하다.

살갑게 연락하며 지내지는 않으니, 그의 문자는 반갑고도 걱정스럽다. 내용도 지레짐작해 보는데, 대개는 얼추 맞다. 이번에도 그랬다. 올겨울 내내 일하고도 돈을 못 받았다. 돈 받을 길도 막막하다고 한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서 나는 놀라지 않고 한숨부터 쉬었다.

노동법이나 경제학은 고용계약을 복잡하게 설명하지만 실상 그리 복잡하지도 않다. 남의 일을 해주고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일한 만큼 그리고 먹고살 만큼 받고 일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런 약속이 ‘계약’이 되려면 몇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먹고살려고 계약을 한 것이니 살아남아야 한다. 일하다 죽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았으면 약속한 돈을 받아야 한다. 이 두 가지도 갖추어주지 못하면서 고용계약의 ‘자유’를 외치거나 노동의 ‘신성함’을 말해서는 안 된다. ‘노동 존중’을 말해서도 안 된다.

매부의 ‘도움 요청’ 문자를 받고 나는 위로의 말도 생략하고 고용노동청에 연락해봤냐고 묻는다. 아직 안 했다고 한다. 회사가 설날 전에 약속한 것이 있어서 기다렸단다. 나는 왜 진작 하지 않았냐고 짜증부터 낸다. 매부는 지난번 임금체불 문제를 고용노동청을 통해 그럭저럭 해결했다. 어느새 나는 체불한 회사가 아니라 여전히 ‘순진한’ 매부를 탓하고 있다. 명절만 되면 ‘임금체불로 쓸쓸한 노동자들’이라는 감성보도를 쏟아내면서도 정작 이 문제를 한 번도 다루지 않는 언론을 그토록 경멸했건만, 나의 처지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동안 공약도 많고 약속도 많았다. “체불임금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매부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도 생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찾아봤다. 버릇처럼 통계부터 살핀다. 마침 참여연대에서 분석해둔 것이 있다. 임금체불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민망할 정도로 ‘막연’했다. 임금체불 노동자는 계속 증가해서 연간 60만명을 향하고 있다. 액수는 2018년 기준으로 1조7천억원이다. 물론 이 숫자는 정부가 근로감독이나 신고 등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에 국한된 것이다. 소리지르고 울고 멱살잡으면서 임금을 겨우 받아낸 사람들은 이 간단한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임금 떼이고 ‘재수 없는 셈’ 치고 돌아선 사람들은 또 어떤가. 어느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직장인의 반절 이상이 임금체불을 겪었고, 그중 30% 정도는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다. “체불임금 제로”는커녕 체불임금이 판치는 세상인 것이다.

알바생만의 얘기도 아니다. 임금체불 노동자의 60% 정도가 건설업과 제조업에서 일한다. 대부분 부양할 가족이 있다. 얼핏 계산해보니, 평균 체불임금 액수가 300만~500만원 정도다. 천만원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변변치 않고 불규칙한 벌이를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돈이다. 임금체불이 한 가족을 순식간에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임금체불 사건의 80% 이상이 30인 이하 기업에서 일어난다. 역시 큰 문제는 하도급이다. 사슬처럼 얽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약탈적인 하도급은 목숨을 보장하지 않고 월급도 제대로 챙겨주질 않는다. 원청은 돈을 줬다고 하는데, 하청기업의 노동자는 그 돈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하소연하면, 하청은 원청에 가보라 하고, 원청은 하청에 가보라 한다. 그래서 근로감독관을 찾고 노동청에 진정도 해보지만 빨리 합의하라는 얘기만 듣기 일쑤다. 합의할 수가 없어 찾은 노동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하니 정부의 힘에 기대는 일을 멀리하게 된다. 얼마 전 조사를 보니, 노무사들은 근로감독의 가장 큰 문제로 ‘합의 종용’을 꼽았다. 그런데도 나는 매부에게 노동청을 왜 진작 찾아가지 않았냐고 따졌었다.

매부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같이 일하다가 임금체불 신세가 된 동료가 자살을 했다. 장례식장에 가는 길이라고 한다. 한 번이라도 임금이 지급되었더라면 목숨을 버릴 상황은 아니었다고 하는 그 문자에는 곰의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 동료는 노동청을 찾아서 도움을 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상담 후에 임금을 받기가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동청은 그가 진정하지 않아서 방문기록이 없다고 했다 한다.

그가 세상을 버리고 나니, 세상의 일이 드러났다. 그가 일한 곳은 4차 하청업체다. 원청은 유명한 ㅍ건설사로서 불법하청으로 수차례 문제가 되었던 회사다. 어느 시민단체에서는 이 기업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늘 그렇듯이 2차 하청은 3차 하청으로 이어졌는데, 3차 하청기업 대표는 2차 하청업체의 이사였다. 종업원 하나 없는 1인 기업이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3차 하청은 당연히 4차 하청으로 이어졌다. 그 끝은 ‘소사장’일 경우가 많다. 사실은 노동자인데 억지로 사업자 등록을 시켜서 이른바 ‘하도급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니, ‘임금’을 받기 힘들고 ‘계약 위반’ 위협에 시달린다. 원청이 지급했다는 돈은 이 ‘묘연한’ 하청 사슬에서 ‘절묘하게’ 사라졌다. 일을 시킬 때는 ‘갑질’, 일값을 치러야 할 때는 ‘운명공동체’. 하도급 구조는 이렇게 완성된다.

이런저런 보도가 나오고 일부 정당에서 도움을 주기 시작하자, 당사자들이 움직였다. 원청 회사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직접 지불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도급사에 이미 실시하고 있는 것인데 설비공급계약에도 적용하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참으로 신속했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토록 더디게 했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상황은 아직 진행 중이다. 매부는 만사를 제쳐두고 유족을 돕고 있다. 그의 문자도 계속된다. 주위에서는 법적으로 따져서 끝까지 처벌하자고 하지만, 그는 유족들의 위로금이라도 제대로 챙겨줬으면 좋겠다 한다. 그들의 처지를 아는지라 몇푼의 귀함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까지 싸우기가 겁나기도 한단다. 나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싸우라고 한다. 서로 돌봐주지 않는 세상에서 누가 누굴 비난하겠는가.

“엄마, 나 임금이 안 나와서 문제가 생기면 남은 아이들 좀 부탁해요.” 감당할 수 없어서 떠난 체불임금자가 여든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다. 삶의 끝에 선 그 노모의 마음을 내가 차마 헤아릴 수 없다. 이 와중에도 들판에는 산수유 꽃봉오리가 터진단다. 징한 봄이 오는 모양이다.

한겨레

이상헌 ㅣ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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