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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일사일언] 열 살짜리 순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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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광표 서원대 교수


소설가 김훈은 서울 절두산 아래 한강길을 오가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들은 왜 낯선 천주교에 목숨까지 바쳤을까. 지식인도 양반도 아닌, 그저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말이다. 2011년 김훈은 소설 '흑산'의 머리말에 이렇게 썼다. "140여 년 전에 무너져가는 나라의 정치 권력은 이 봉우리에서 '사학(邪學)의 무리'를 목 자르고 그 시체를 강물에 던졌다. 죽임을 당한 자들이 1만 명이 넘었다. 서쪽에서 낯선 시간이 거슬러 올라오던 한강은 피로 씻기었고 봉우리의 이름은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

소설의 중심축은 정약용의 형 정약전과 '백서(帛書) 사건'의 주인공 황사영이다. 한 사람은 천주교와 거리를 두었고 한 사람은 천주교를 위해 순교했다. 여기에 권력자와 양반, 중인, 하급 관원, 마부, 어부, 노비 등 여러 계층의 삶이 처연하게 교직되어 흘러간다. '사학'이라는 죄목으로 수많은 백성이 죽고 또 죽는다.

종종 백제의 고도(古都) 공주에 간다. 소설 '흑산'을 읽고 난 뒤 언제부턴가 공산성, 무령왕릉보다 황새바위 언덕을 먼저 찾는 버릇이 생겼다. 황새바위 언덕은 천주교 순교지로, 제민천을 사이에 두고 공산성과 마주 보고 있다. 제민천은 공주 시내를 가로질러 금강으로 이어진다. 조선 시대 충청 감영이 공주에 있다 보니 19세기 내내 천주교도들이 공주로 붙잡혀 왔다. 이들은 황새바위 언덕에서 죽음을 맞았다. 천주교도들을 처형하고 나면 공산성 높은 곳에 시신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그들의 피가 언덕을 타고 흘러내려 바로 앞 제민천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는 얘기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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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바위 언덕엔 순교자 300여 명의 이름을 새겨넣은 석비들이 있다. 손 서방, 장 서방, 최 서방, 한 서방, 김 과부처럼 이름 없는 이도 많다. 김순오의 아들도 있고 김춘겸의 딸 친구도 있다. 나이를 보니 몇몇은 겨우 열 살이다. 열 살. 아련하고 먹먹하다. 그들은 왜 저리도 서둘러 생을 마쳐야 했을까. 소설 '흑산'이 다시 떠오른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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